월척 붕어의 가치


                                          낚시인에게 월척은 꿈이었다.

                                       송 귀 섭 ( 천류 프로스텝, 이노피싱 어드바이저)


  1. 계측자를 대지 말았어야 할 붕어 이야기


     13년 전. 낚시 경력 40년인 당시 64세인 이회장님의 소원은 더 나이 들어 낚싯대를 놓기 전에 월척붕어를 만나서 어탁을 하여 간직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면서 휴일이면 빼놓지 않고 낚시터를 찾으신 분인데도 필자와 만난 1994년 당시까지 월척붕어를 만나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회장님은 1995년에 필자가 무지개 조우회를 결성할 때 자진해서 회장직을 맡아 주었다. 그리고 2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회를 반석위에 올려 주었고, 그 후 6년간은 회의 고문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지도해 주었다.(그래도 호칭은 끝까지 회장님이었다)

  그런 이회장님이 지난 2003년 노환으로 그만 낚싯대를 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끝내 월척 붕어를 낚아보지 못하고......,

  필자는 이회장님 생각만 하면 크게 후회를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날 우리는 회장님을 모시고 장성호로 밤낚시 출조를 했다. 당시가 2002년이니 회장님이 몸져눕기 한해 전 일이다. 그때도 가을 날씨가 차가우니 쉬시라고 권했는데 이회장님은 그래가지고 얼마 남지 않은 세월에 언제 월척을 만나겠느냐고 따라 나섰다.

필자는 이회장님의 자리를 봐드리면서 기왕이면 떡밥을 딱딱하게 하여 크게 달아 사용하라고 권했다.(이를테면 떡밥대물낚시를 권한 것이다)

그리고 밤 10시 경, 드디어 회장님 쪽에서 철퍼덕! 하는 큰 물보라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몇 번의 물장구 소리가 이어졌다.

“커!” 이회장님은 외마디처럼 한마디 내지르고는 붕어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필자와 회원들은 일제히 회장님 자리로 뛰어갔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회장님은 항복한 붕어를 안전하게 들어내었다.

한 눈에 봐도 족히 월척이 될듯하였다.

“축하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회원 모두가 축하 인사를 건네고 다시 밤낚시를 하였다.

그리고 아침 철수 시간. 필자는 회장님의 월척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그 붕어를 계측자 위에 올렸다.

그런데 “아뿔사! 월척에서 0.4cm가 모자라는 29.9cm가 아닌가!”

이회장님에게 하루 밤을 살림망에 두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낚을 당시에는 분명히 월척붕어가 맞았었다고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지만 회장님은 실망한 표정으로 “다음에 보세나” 하고는 쓸쓸히 가방을 멨다.

그리고 1년 여 더 동행출조를 하면서 회원 모두가 월척을 몇 수씩 낚았지만 이회장님은 끝내 월척붕어 어탁을 남기지 못하고 낚싯대를 놓아야 했다.

  그때 계측자에 올리지만 않았더라면 이회장님은 평생소원이었던 월척붕어 어탁을 하여 고이 간직했을 것이다. 어쩌면 병상에서 그 어탁을 보면서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월척붕어는 이렇게 귀한 것이었고, 그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계측자를 대지 말았어야 했다.

때로는 마음의 월척도 계측자로 잰 월척 보다 귀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계측을 했어야 할 월척 붕어 이야기


     대개의 경우 턱걸이 급의 월척을 낚으면 낚은 당사자는 낚는 순간에 한 치수 크게 느끼고,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월척에서 조금 모자라게 느껴진다. 특히 밤낚시 간에 만나는 붕어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크기 차이가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1997년 겨울. 최조사는 장흥 지정지에서 30.5cm의 월척붕어를 생애 최초로 만났다.

그러나 그 당시 필자를 비롯한 주변 회원들은 서슴없이 월척이 조금 모자란다고 판정을 했다. 체고가 없고 훌쭉한 붕어의 크기가 눈대중으로 보아서 작아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조사는 생전 처음 낚은 큰 붕어를 고이 가지고 집에 가서 자에 올려 보았고, 그 붕어는 30.5cm의 틀림없는 월척 붕어였다.

  이후 3년이 지나서야 최회원은 계측자에 올려서 35cm로 공식 확인한 월척붕어를 만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필자에게만 조용히 말했다.

“사실은 이번이 첫 월척이 아닙니다. 3년 전 지정지에서 낚은 붕어가 틀림없는 30.5cm 월척이었고, 서툰 솜씨로 어탁을 하여 집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동안은 자존심도 상하고 참 서운했었습니다.”

  이제 35cm의 월척 붕어를 만났으니 밝은 표정으로 하는 지난 얘기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직도 그때의 서운함이 묻어있었다.

  그렇다. 그의 첫 월척임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당시에 정확히 계측을 하고 인정을 했어야 했다.  별것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당사자는 월척의 꿈을 이룬 그 황홀한 성취감이 한 순간에 무시당했던 것이다.

  월척은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귀한 것을 너무 가벼이 취급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요즈음 종종 들을 수 있는 <잔챙이 월척입니다>하는 말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사용해서는 안 될 말이다.


  3. 월척을 만나는 것은 낚시인 최대의 꿈이었다.


     요즈음에는 월척을 쉽게 만난다. 전 보다 월척급 붕어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월척급의 대형 붕어를 대상으로 한 낚시 기법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월척을 만나는 것이 모든 낚시인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때의 월척은 큰 화제꺼리가 되었었다.

  지난 호에 보면 1976년에 대학 총장, 교수들이 어울려서 낚시를 하면서 월척을 만나면 온 천지에 자랑을 하고는 박제를 하거나 포르말린 병에 고이 넣어서 보관하는 모습이 <업둥이>라는 당시 낚시수필에 나온다.

  필자가 조우들과 어울려 서울에서 전라도, 경상도 까지 원거리 출조를 하던 1980년대에는 버스에 가득 출조한 전원이 꽝조황이라도 누군가 한사람만 월척을 만나면 돌아오는 내내 무용담을 나누며 전원이 같이 기뻐하고 그날 출조에 만족해했었다. 그리고 월척을 만난 조사는 돌아오는 길에 월척턱으로 당일 동행한 전원에게 식사를 대접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어떠한가? 4짜가 아니면 큰 붕어 취급도 하려들지 않는다. 분명히 잘 못된 풍토다.

우리주변에는 10년 이상의 조력에도 아직 월척붕어를 만나지 못한 동호인들이 수없이 많다.(대개는 순수 즐기는 낚시를 하는 연륜 있는 동호인들이다.)

이런 동호인에게는 지금도 월척을 만나는 것이 최대의 꿈이다.

사시사철 대어낚시만을 구사하면서 월척 몇 마리 쉽게 만나다고 하여 월척붕어를 소홀히 취급하는 풍토는 바로 잡아야 한다.

특히 <대물>이라는 용어에 <월척>이 가치 하락하는 것은 잘 못이다.


  4. 가치 있는 월척이란?


     순수 낚시를 즐기다가 우연히 만난 월척은 확률상 어렵게 만난 행운의 월척으로서 가치가 있다.

  대어낚시를 구사하다가 만난 월척은 스스로 의도하여 얻은 월척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자리를 비우거나 자고나니 걸려있는 월척 혹은 낚싯대를 차고 나가도록 까지 태만하다가 얻은 월척은 스스로 낚은 월척으로서는 가치가 없다.

  지난 해 필자와 동행 출조를 자주하는 아내는 4마리의 월척을 만났다. 그러나 스스로 2마리만 인정한다.

한 마리는 차에서 자고 나오니 걸려있었으므로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하고, 한 마리는 잠시 찌를 못 본 사이에 필자가 옆에서 소리를 질러서 챔질을 했으니 인정을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히 입질을 다 보고 챔질을 하여 얻은 월척만이 자기 월척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월척만을 목적하여 밀생한 수초에 생미끼를 달아서 낚은 월척은 가치가 없고, 한가로운 낚시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월척만이 진정한 월척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확률상 어려운 월척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고, 확률을 높이는 기법을 구사하여 목적을 이룬 월척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1930년대 계용묵 선생의 <낚시질 독본>에 이미 새우나 옥수수 미끼를 이용한 대어낚시 기법이 언급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낚시를 구사하여 만난 월척은 그 자체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다.


  5. 월척붕어에 대한 예우와 보호


     어제 제주도 민물낚시 회원인 조우에게서 제주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고 전화가 왔다. 필자가 돌아 본 남녘의 산자락에는 노란 산수유가 디를 두르고 피어있었다.

바야흐로 붕어 산란기가 임박한 시기다. 아마 이 글이 독자에게 선을 보일 즈음이면 남녘으로부터 붕어 산란이 진행될 것이다.

  이렇게 산란시기가 되면 월척붕어를 만나기가 쉬워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 밤에 10여수의 월척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이를 우리는 산란특수라고 한다.

  그러나 산란기에 종족보존을 위해 제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수하고 접근하는 붕어를 무작위로 낚아내어 취하는 것은 지성인의 도리가 아니다.

낚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붕어를 낚아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낚시를 하여 붕어를 낚되 뱃속에 알을 가진 붕어를 적절히 보호해 주자는 것이다.

월척붕어는 우성 유전자를 가진 붕어다. 그러므로 월척붕어가 산란을 하면 우성 유전자를 가진 새끼 붕어들이 많이 탄생하고 나중에는 우리가 찾는 월척붕어의 개체수가 그만큼 증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산란기에 낚은 월척붕어는 가급적 살림망에도 담지 말고 방생을 하자.

  그리고 만약 필요하여 한두 마리를 취했다면 그 붕어의 흔적으로 사진을 찍어 두거나 어탁을 하여 나에게 낚여 준 고마운 붕어에 대해 최소한의 예우를 지켜주고 기념을 하자.

  낚시인에게 월척은 골프의 홀인원이나 볼링의 퍼펙트게임 기록과 같은 기념할 만한 것이다.(홀인원이나 퍼펙트게임 기록 시에는 기록표와 함께 트로피를 만들어 보관한다)

 월척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높여주는 것이 월척붕어에 대한 예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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