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호덕지의 여름 이야기
폭염에 죽은 흑염소 묻어준 그곳에서...
김중석 [낚시춘추 객원기자. (주)천류 필드스탭] 낚시춘추 2010년 9월호
이야기 하나
꾼들이라면 누구나가 마음속에 품은 저수지가 하나 있듯 필자에게도 늘~ 마음속에 두고 있는 저수지가 있으니 고흥의 호덕지가 그곳이다.
출조 할때마다 월척을 몇 마리씩 안겨주었는데 이곳엔 남다른 추억이 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여름이었는데 가뭄으로 배수가 많이 이루어져 즐겨 찾던 제방 좌안 하류의 땟장수초지대는 물이 빠져 매말라 있었다.
그나마 수심이 나오는 제방에 앉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데 풀밭에 흑염소가 네 발을 하늘로 향하고 누워있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니 죽어 있었다.
제방권에 방목해 키우던 흑염소가 가뭄과 폭염 때문에 죽어버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이미 부패가 된 듯 배가 불룩했다. 그냥 방치 하면 낚시터에 냄새가 날 것 같아 고민하다가 이걸 포인트에 묻어두면 나중에 만수위를 이룰 때 녀석의 시신이 자양분이 되어 붕어가 몰려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를 막고 고삐를 잡아끌고 와서 당시 즐겨 사용하던 2.7칸대 봉돌이 떨어질만한 지점에 땅을 파고 묻은 뒤 둔덕이 지게 흙을 쌓았다.
보름 정도 지난 후 다시 호덕지를 찾았을 때 저수지는 만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염소 묻어둔 포인트에는 물이 차올랐고 뗏장수초가 잘 자라 있었다.
2.7칸대를 기준으로 묻어두었기 때문에 흑염소 포인트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날 밤낚시 하면서 염소 귀신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약간은 불안 했지만 흑염소 밑밥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참붕어 미끼에 3마리의 월척을 낚아냈다.
그 뒤로도 그 포인트에 열 번 출조해 아홉 번에 걸쳐 두세 마리씩의 월척을 낚을 수 있었다.
이야기 둘
지난 7월 중순경 회사에서 주최하는 낚시대회가 고흥 봉계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황급히 호덕지로 장소가 변경되었다.
일기예보로는 시간당 30mm의 집중 호우가 내릴 것이라고 해서 새물 유입구 쪽에 포인트를 잡으려 했으나 찌가 겨우 설 정도로 수심이 얕다. 가량비만 흩뿌리는 상황이어서 새물 유입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예전에 준설을 했던 지역으로 가서 마름 포인트에 앉았다.
흙탕물은 아니지만 물색이 너무 좋아 예전에 참붕어로 월척을 낚던 기억에 채집망을 담궈보니 커다란 징거미만 한 마리 채집이 될 뿐 참붕어나 새우는 채집이 되지 않았다.
예전에 그토록 많이 자생하던 새우와 참붕어는 블루길이 유입이 되면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생미끼에 뭔가 큰게 낚일 것 같은 분위기여서 옥수수 한 통과 지렁이 세통을 준비해 먼저 지렁이를 꿰어 찌를 세웠는데 금세 반응이 왔다. 아주 작은 블루길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지렁이로만 계속 사용했더니 밤 11시까지 30여마리의 블루길을 낚아내다가 지렁이 세 통을 다 써버렸고 그 와중에 월척 두 마리를 낚아 냈다.
그 뒤로 옥수수로만 낚시를 했는데 간간이 8~9치 붕어가 낚여 올라오더니 이른 새벽 거의 폭발적인 입질이 나타내면서 월척 세 마리를 더 낚았다.
아침 철수 시간까지 혼자 낚아낸 붕어가 열네 마리였고 그중에 월척이 다섯 마리가 섞여 있었다.
블루길을 지렁이로 계속 낚아내면 언젠가는 붕어가 낚이게 돼있다는 것은 지난 봄 해창만 수로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이야기 셋
일주일 후인 7월 17일 동료들과 함께 호덕지를 다시 찾았다.
그동안 간간이 내린 집중호우 때문에 만수위를 이룬 호덕지는 무넘기에 콸콸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저수지 전역이 뻘건 흙탕물로 변해 있었다.
김찬승 회원이 “물색이 너무 탁해 붕어가 숨도 못 쉬겠는데 입질을 할까요?” 묻기에 “뻘물이 질 수록 블루길의 성화가 사라지닌 지렁이로 공략해보면 분명 덩어리 한 마리 나올 것이다” 했더니 못 믿겠다는 듯 고개만 갸우뚱거린다.
물색만 봐서는 “오로지 밤낚시터”인 호덕지에서도 낮 조황을 볼 것 같은데 날이 너무 덥다.
파라솔을 펴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서 해가 넘어가기만을 기다리며 중하류에 있는 창고 그늘에서 쉬면서 동료들에게 호덕지의 흑염소 무덤 이야기를 해줬더니 모두들 공감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재욱 회원은 그 무덤이 어디냐고 묻더니 아예 그 자리에서 낚시를 해보겠다고 한다.
그곳엔 뗏장수초는 없고 듬성듬성 마름만 자라고 있다. 이미 10년이나 지났으니 효과가 남아 있을 리 만무할 텐데?
상류 물골지대에는 맑은 새물이 약간씩 흘러들고 있고 전체적으로 저수지 물색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른 시간에 저녁을 해결하고 각자 포인트에 들어갔는데 상류 준설 포인트에 앉은 김찬승 회원이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끓었다.
채비를 내리자 마자 바로 지렁이 미끼로 8치 붕어를 낚아냈다. 여기저기에서 붕어 퍼덕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옥수수와 지렁이 미끼만을 준비했는데 옥수수보다 지렁이 미끼에 반응이 빨랐다.
첫 월척은 김성봉 회원이 자정 무렵 낚아냈다. 이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김찬승 회원이 33cm 월척을 낚아냈는데 역시 지렁이 미끼로 낚은 것이었다.
하지만 새물 유입구에서 뒤늦게 새물 찬스를 보겠다는 배호남 회원과 이성균 회원은 밤새 블루길 입질에 시달려야 했다. 새물찬스이긴 새물찬스인데 블루길이 몰려드는 새물찬스였다. 흙탕물엔 붕어가 남아 있고 블루길이 맑은 물을 찾아 유입구 쪽으로 몰린 것이다.
아침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보니 도합 6마리에 준척 붕어를 상당량 낚았다. 한편 잔뜩 기대를 하고 흑염소 포인트에 앉은 지재욱 회원은? 월척 이상의 붕어를 두 마리나 걸어서 끌어내다가 마름 줄기를 감는 바람에 터트렸다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흑염소 무덤의 효능이 남아있는 건가?
가량비 속에서 밤새 성화를 부린 블루길을 따돌리고 월척 5마리를 낚아낸 필자.
아침에 입질을 받은 지재욱 회원.
이 자리가 10년전 내가 흑염소를 묻어둔 ‘흑염소 포인트’이다.
큰비가 내려 맑은 물이 유입되고 있는 최상류 새물 유입구.
뗏장수초에 몸을 맡긴 월척 붕어
많은 비가 내려 저수지 전역이 뻘건 흙탕물로 뒤덮인 호덕지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 낮잠을 즐기고 있다.
월척과 준척으로 채워진 필자의 살림망.
밤새 참붕어가 수면에 튀더니 찌몸통에 산란을 했다.
호덕지 상류.
만수위에 물색도 탁해져 입질이 살아났다.
흑염소 포인트에서 준척 붕어를 낚아낸 지재욱 회원
배호남 회원이 아침에 낚은 월척붕어 새물 유입구에서 지렁이로 낚았다.
최종도 회원이 좌안 하류 뗏장밭에서 월척을 끌어내고 있다.
월척을 포함해 준척급으로만 손맛을 본 밤낚시 조과.
좌로부터 김찬승, 배호남, 김성봉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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