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 송귀섭의 붕어낚시 상식

 (FTV 제작위원, 붕어愛섬 진행, 붕어낚시 첫걸음 & 붕어 대물낚시 저자)


낚시의 등급이란?

        낚시 행위에만 등급이 매겨진다.


  낚시의 등급을 세분화하여 14등급으로 분류한 주옥같은 글이 있다. 소설가이면서 낚시인인 이외수선생이 정리해서 남긴 ‘구조오작위(九釣五作慰)’가 그것이다.

이외수선생은 조졸(釣卒 초보자), 조사(釣肆 방자한 꾼), 조마(釣痲 낚시 홍역자), 조상(釣孀 아내는 주말과부), 조포(釣怖 낚시 절제), 조차(釣且 다시 조락), 조궁(釣窮 조도의 문 앞에 이름)을 거쳐 조성(釣聖 낚시의 도 깨우침)과 조선(釣仙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구조(九釣)에 해당한다고 했다.

아울러서 남작(藍作 겸허함), 자작(慈作 자비로움), 백작(百作 지혜로움), 후작(厚作 온후하고 두터움), 공작(空作 마음을 비움)이 오작위(五作尉)에 속하는 것이라고 분류를 했다.

이것은 한 낚시인이 낚시에 입문해서부터 완성단계까지 발전해가는 과정을 등급화 하여 분류한 것이다.

이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그 과정을 따라서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며, 평생을 조졸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젊은 나이에 조선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니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속하는가를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낚시를 하는 사람이 아닌 낚시 분야별로도 등급을 매길 수가 있을까? 예를 들면 구사하는 낚시분야와 활용기법에 따라서 ‘메이저리그 낚시’와 ‘마이너리그 낚시’로 분야별 등급구분을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얘기다.


낚시의 분야는 다양하나 그 등급은 하나다.

  낚시를 크게 구분하면 바다낚시와 민물낚시가 있고, 더 분류하면 바다낚시에는 선상낚시와 갯바위낚시가 있으며, 민물낚시에는 호소낚시와 계류낚시가 있다.

또한 이를 기법별로 구분하면 바다낚시에는 찌낚시, 원투낚시, 지깅낚시, 트롤링, 기타 루어낚시 등 수많은 분야가 있고, 민물낚시에는 대낚시, 릴낚시, 루어낚시, 플라이낚시 등의 수많은 분야가 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낚시의 다양성은 그 분야와 기법별 혹은 낚시장소와 대상으로 하는 어종별 혹은 사용하는 미끼별 등 수없이 더 많은 종류로 세분화가 된다.

즉 바다낚시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느냐(혹은 해외로 나가느냐) 아니면 동내 앞 해변에서 낚시를 하느냐의 문제에서부터 찌낚시를 하느냐 원투낚시를 하느냐 또는 돔을 대상으로 하느냐 망둥이나 학꽁치를 대상으로 하느냐 등등 많은 분야로 구분을 한다.

또한 민물낚시의 경우는 원거리출조를 하느냐 동내낚시를 하느냐의 문제로부터 자연노지에서 하느냐 유료낚시터에서 하느냐 혹은 대낚시를 하느냐 릴낚시를 하느냐 또는 올림낚시를 하느냐 내림낚시를 하느냐 등과 사용하는 미끼와 채비가 어떤 것인가까지 수없이 많은 부분으로 구분을 한다.

  그런데 낚시를 취미로 하는 동호인들끼리도 그 분야별로 호, 불호를 구분하여 등급을 매기려고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즉 자기가 즐겨하는 분야의 우월성을 내세우면서 나머지 분야의 낚시를 비하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비가 많이 소요되는 원도 바다낚시와 흐르는 맑은 물의 계류낚시는 스스로 고급낚시로 취급하면서도 마을 앞 방파제의 생활낚시나 가까운 냇가에 앉아서 하는 민물붕어낚시는 저급으로 취급하고자하는 심리나, 붕어낚시 중에서도 전통올림낚시를 즐겨 구사하는 낚시인이 새로운 내림낚시분야를 ‘낚시가 아니다.’라고 비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낚시의 등급은 즐겨하는 낚시분야에 따라 비교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고 낚시를 하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동내 앞 갯바위 끝에도 조선(釣仙)이 호젓이 앉아 망상어낚시를 즐기고 있을 수가 있고, 냇가에 허름한 차림으로 릴대를 던져두고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낚시꾼이 조선(釣仙)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한 멋진 찌 올림을 감상하면서 적절한 순간에 챔질하여 물고기를 만나는 고수가 있을 수도 있고, 찌를(사실은 미끼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여유 있게 즐기다가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며 ‘허허’하고 들어내는 고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낚시의 분야는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등급은 오로지 ‘낚시’라는 것 하나일 뿐이다.


높은 등급의 낚시는 스스로의 낚시행위에 달려있다.

  경비를 많이 들여서 해외낚시를 간다거나 원도로 출조를 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나만의 낚시여행이나 낚시휴가를 멋지게 설계하고 채비를 챙겨서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낚시의 즐거움에 젖어 행복할 수가 있고, 낚싯대 하나 들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서 대상어종을 만나는 기쁨이 무엇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생에 최대의 기념물고기를 만난다면 산악인이 엄청난 시간과 금전, 노력을 투자하면서 에베레스트를 점령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그 기쁨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다만 해외나 원거리 출조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높은 등급의 낚시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등급의 낚시는 결국 낚시를 구사하는 사람에 의해서 그 가치가 매겨진다.

  예를 들면 많은 돈을 들여서 좋은 곳에 출조를 했더라도 음주에 고성방가를 하다가 어쩌다 월척붕어를 낚아들고 으스대면서도 쓰레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낚시라면 그것은 최하등급의 낚시를 한 것이고, 두엄자리에서 지렁이 몇 마리 파들고 냇가에 나가서 자잘한 붕어들과 노닐더라도 그 모습이 여유와 진지함이 있고 주변을 잘 정리하는 낚시라면 최고등급의 낚시를 한 것이다.

따라서 돈을 많이 투자하는 낚시가 꼭 등급이 높은 낚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돈을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도 그 모습이 고매하면 높은 등급의 낚시가 되는 것이다.

고급의 장비가 고급낚시를 대변할 수도 없고, 비싼 의복이 고급낚시를 대변할 수도 없다. 높은 등급의 낚시는 우리 스스로의 낚시행위에 달려있는 것이다.


강태공과 헤밍웨이, 정조대왕과 이승만대통령은 누가 높은 등급의 낚시를 했는가?

  강태공 여상은 지금으로부터 3100여 년 전의 동양인물이고, 헤밍웨이는 100여 년 전의 서양인물이다. 정조대왕은 조선22대 왕이었고, 이승만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다.

이 네 인물이 같은 점은 낚시를 취미로 했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강태공은 물고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반면 헤밍웨이는 큰 물고기에 대한 욕망이 강했으며, 정조대왕은 여러 신하들과 어울려서 낚시와 주연을 소란스럽게 즐기면서 군신관계를 돈독히 한 반면 이승만은 홀로 낚시터에 앉아서 조용히 국정을 구상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강태공은 자기수양의 낚시를 했고, 헤밍웨이는 도전과 투지의 낚시를 했으며, 정조는 어울려 화합하는 낚시를 했고, 이승만은 홀로 정숙한 낚시를 즐겨했다.

자, 그럼 누가 더 높은 등급의 낚시를 했겠는가?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본다면 강태공은 물고기와는 상관없이 시대차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낚시꾼이고, 헤밍웨이는 큰 고기만 노리는 욕심 많은 낚시꾼이며, 정조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떠드는 낚시꾼이고, 이승만은 사람들과 어울릴 줄도 모르는 자기 혼자서만 즐기는 낚시꾼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저급한 낚시를 했다고 할 수가 없다.

강태공은 낚시를 통한 자기수양으로 후에 중원통일의 주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나라의 시조 왕이 되어 부국을 이루었고, 헤밍웨이는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과 바다 등의 명작을 남겼다.

또한 정조대왕은 낚시를 통한 군신화합으로 중흥과 개혁을 이루는 성군이 되었고, 이승만은 가난과 이념적 갈등 등 혼란의 시대에 나라를 추스르는 초대대통령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낚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스스로에게 맞춘 최고등급의 낚시를 했던 것이다.

 

   

            강태공이 낚시를 했던 조어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정조대왕이 낚시를 했던 부용정                           낚시중인 이승만 초대대통령


어느 낚시가 하급낚시인가? - 하급낚시란 따로 없다.

  앞에서 낚시는 그 분야와 무관하게 행위가 정당하면 등급을 매길 수 없다고 썼다. 즉 어떤 낚시를 하거나 간에 그것 때문에 하급으로 취급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간혹 전통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를 붙여 일부 분야 낚시를 하급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심한 것은 같은 붕어낚시를 하면서도 대낚시를 하는 사람은 릴낚시를 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떡밥콩알낚시를 즐겨하는 사람은 지렁이낚시를 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대물낚시를 즐겨하는 사람은 떡밥콩알낚시를 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또한 근래에는 붕어낚시가 찌 올림 낚시와 찌 내림 낚시로 크게 대별되는 시대인데, 찌 올림 낚시를 하는 사람은 찌 내림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전통이 아닌 낚시로 취급하여 비하한다.

특히 릴낚시는 물고기가 이미 걸려있는 것을 건져만 내는 어부와 같은 낚시라고 하면서 비하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경험을 하지 못해서 하는 무지한 소리다.

필자가 80년대 후반에 릴낚시만을 심취해하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릴낚시 중 입질이 왔을 때 적절한 타임에 챔질을 하지 못하고 한눈을 팔면 대부분은 흡입했던 미끼를 뱉어버리고 바늘에는 걸리지 않아서 줄이 느슨하게 늘어져 있게 마련이었다.

예를 들어 10대를 배치해놓고 밤잠을 자고 나올 경우 자동걸림은 한두 대 정도고 나머지는 미끼만 없어진 채 원줄이 늘어져 있었다.(어쩌다가는 한두 마리가 걸려서 다 휘감아버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은 옥수수슬로프낚시에서도 마찬가지다.(필자는 여러사람이 따로 발전시키고 있는 이 분야를 옥내림, 새내림, 지내림, 참내림, 떡내림, 콩내림 등을 통합하여 ‘전미낚시’라고 명명했다.)

즉 릴낚시든 전미낚시든 전부가 자동 걸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가 몇 년 동안 전미낚시를 시도해보면 적절한 입질타임에 챔질을 하지 못할 경우 대부분은 입걸림이 잘 되지 않았다.

즉 찌가 위로 솟구쳐 오를 때 찌올림낚시처럼 멋진 찌 올림을 보고 챔질을 하면 십중팔구는 헛챔질이 된다. 이 낚시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다. 그러나 찌가 올랐다가 서서히 내려가서 잠겨들 때 챔질을 하면 십중팔구는 입걸림이 된다.

이를 보고 이미 바늘이 입속에 걸린 붕어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찌가 내려가는 모습에서도 챔질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십중팔구는 붕어가 뱉어버리고 자동걸림이 되지 않는다.

즉 찌 내림낚시도 찌 올림 낚시 때처럼 적절한 챔질타임에 챔질을 하지 못하면 입걸림이 안 되는 낚시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언제부터 찌 올림 낚시만을 전통으로 했는가?

찌를 한문으로 표현하면 깃 우(羽)자를 쓴다. 애초에 새의 날개 끝 털을 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우끼라고 했다.)

이런 깃털 찌가 찌올림이 됐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새의 깃 대신에 수수깡이나 갈대, 그리고 현대적인 찌를 사용하면서는 어떠하였는가?

필자가 어린 시절 처음낚시에 접했던 1960년대의 붕어낚시는 하나같이 찌를 끌고 들어가는 찌 내림의 낚시였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까지의 전통이었다.(초등학교 때 지금도 유명낚시터인 마을 앞 월천지에 서울 등 도시에서 버스로 출조한 낚시꾼들을 구경하러 가면 하나같이 찌가 들어가면 챘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에 들어서 선지자들에 의해 찌맞춤이라는 붕어낚시의 혁명이 일어났고, 그로인해서 찌 올림 낚시라는 낚시분야로 진화를 하여 그것이 전통붕어낚시화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중층낚시와 내림낚시가 도입되어 유행을 하면서 붕어낚시는 찌 올림 낚시와 찌 내림 낚시로 대별이 되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흐르고 있다.

  그러는 중에 일부에서 옥수수슬로프낚시가 ‘우리나라만의 대물낚시분야 찌 내림 낚시’로 새롭게 시도 되었고, 이것이 FTV와 fs-tv를 통한 방송프로그램과 낚시춘추를 비롯한 낚시잡지의 기획취재 등으로 붐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현재도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서  보완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나라 붕어낚시의 기법은 찌 올림과 내림으로 분야가 구분되어 전통을 이어 계승 발전되어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러니 찌 올림과 찌 내림의 문제를 기준으로 하여 그를 소개한 방송(사실상 모든 낚시관련방송)이나 잡지사(사실상 모든 잡지사) 혹은 낚시인을 폄훼(貶毁)하는 것은 스스로가 진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사고(私考)의 고립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개화기 때 ‘양반이 어찌 갓 쓰고 자전거를 타랴.’하며 거드름을 피웠던 것과 다르지 않다.(나중에는 오히려 양반들이 번쩍번쩍하는 자가용 자전거를 타고 긴 카이젤수염을 흩날리며 폼 잡았었다.)

  결론적으로 낚시는 어느 분야이든 그 행위가 타당하고 모범적인 모습으로 낚시를 구사한다면 어느 낚시이든 하급이라고 폄훼해서는 안 된다.

경험이나 연구를 하지 못하고 어느 분야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하는 소리가 된다. 즉 평가를 하려면 자기만의 생각(私考)에만 머무르지 말고 두루 경험을 통해서 연구(思考)를 해 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진화에 순응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고 만다. 그러니 스스로 도태되지 않으려면 시대의 발전과 진화에 능동적으로 임해야 한다.

자. 이제 낚시에 꼭 등급을 매기고 싶다면 그 분야가 아니라 오직 낚시행위에만 등급을 매겨야 한다.

낚시분야에 하급낚시란 분야는 따로 없기 때문이다.


출처 : 평산의 낚시예찬
글쓴이 : 평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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