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반산지

새우, 참붕어 미끼에 허리급 퍽!퍽!

가람 김중석[낚시춘추 객원기자. (주)천류 사외이사 · 필드스탭 팀장]

해빙기와 붕어 산란철을 맞아 호남지방의 붕어들도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고흥의 해창만수로의 경우, 유명세를 탔던 포인트에는 지난 2월 중순부터 꾼들이 발길이 이어지며 북적였다.

그러나 낚시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낱마리 월척에 준척급 붕어 몇 마리가 전부였다.

시기적으로 조금은 이른 듯했다.

애초 목적지로 예상한 해창만수로는 그간 출조 경험으로 봐서 3월 중순부터 시작해 한 달 동안 4짜 붕어를 비롯해 덩어리급들이 출몰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회원들과 의논한 결과 해창만수로는 낚시춘추 5월호 화보촬영지로 미뤄두고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고흥군 두원면에 있는 안행저수지였다.

안행지는 매년 3월 초순이면 상류 수초지역에서 월척급 붕어가 마릿수로 출몰했던 곳이다.

배스와 블루길이 유입된 곳으로 보성군 벌교읍에서 고흥읍 방면으로 가는 15번 국도변에 있지만 낚시인들의 출조는 많지 않은 곳이다.

지난 34, 여수시청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이상현 회원을 선발대로 보내봤다.

그러나 이상현 회원에게서 날라 온 카톡 사진은 의외였다. 전방 10m 지점까지 바닥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물색이 맑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자원이 많아도 이렇게 맑은 물색에서는 붕어가 낚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급하게 출조지를 바꿔야 했다. 황급히 그동안의 출조 기록을 뒤적인 끝에 찾아낸 곳은 안행지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반산지였다. 네비 주소를 곧바로 이상현 회원에게 보내줬다.

 

손가락 크기의 참붕어를 삼등분해 미끼로

반산지는 1968, 전국적으로 저수지 축조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이다.

만수면적 6천평 규모이며 수초가 없는 밋밋한 준계곡지다.

배스와 블루길이 유입되지 않는 토종터로, 2016년에 무넘기 공사를 하면서 상류 일부를 준설했다. 비포장이었던 제방 우안 농로는 바위로 축대를 쌓고 시멘트 포장을 마쳐 이동이 훨씬 쉬워졌다.

당시 무넘기 공사를 했지만 하류 깊은 곳에는 여전히 물이 많아 어자원은 고갈되지는 않았다. 생김새가 밋밋해 수초 많은 곳을 좋아 하는 낚시인이 보면 볼품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전히 월척 이상급 붕어를 많이 품고 있는 곳이다.

필자는 몇 해 전 봉암지로 출조했다가 짬낚시로 허리급 월척을 여러 마리 낚아냈는데 그때의 추억을 살려 반산지로 향했다.

오후 2시경 낚시터에 도착해 포인트를 둘러보니 수위는 만수위에서 80%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류 암반지대에는 부분적으로 바닥이 보이긴 했으나 굴곡이 있는 곳은 수심이 1m가 넘게 나왔다.

좌안 산 밑 중상류 비포장 농로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 보니 낚시의 흔적은 없었다. 수심을 체크해 보니 2m가량으로 깊었다.

저수지 형태나 수심대, 물색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해보니 늦은 밤에나 입질이 들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열 한 대의 낚싯대를 펼쳐 놓고 마르큐사에서 새로 출시한 노리텐떡밥을 묽게 개어 집어했다.

어분과 글루텐이 함유된 제품으로 토종터에서는 물론 유료터의 향붕어와 각종 수입붕어낚시에서도 잘먹힌다고 알려진 제품이다. 특히 떡밥이 손에 전혀 묻지 않아 편리했다.

유준재 회원은 인근의 계매지에서 새우를 채집해 오느라 늦게 도착했다. 덕분에 채집된 새우를 회원들과 나눠 사용할 수 있었다.

해 질 무렵 새우와 지렁이 미끼는 참붕어로 보이는 잡어의 파상공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큼지막한 새우를 바늘에 꿰어도 금세 사라질 정도였다. 새우가 감당이 안 되자 이상현 회원이 뜰채를 들고 연안 석축 밑을 훑어가며 참붕어를 채집하기에 이르렀다. 한참 동안 열댓 마리의 참붕어와 새우를 채집했지만 미끼로 쓰기에는 참붕어가 너무 컸다.

오후 6시에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이상현 회원이 볼멘소리를 했다. 외래어종터만 다니다가 토종터에서 낚시하니 도통 적응이 안 된다는 애기였다.

필자 역시 예전 토종터 대물낚시 때는 잡어성화를 으레 견뎌가며 낚시했지만 배스터에 익숙한 후로는 토종터 낚시가 힘들어졌다.

이상현 회원은 손가락 크기의 참붕어를 삼등분 하여 바늘에 꿰었는데 그러자 잡어는 더 이상 성화를 부리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자동빵에 걸려든 4짜

10. 최상류 수중에 암반으로 형성된 포인트에 앉았던 이신호 회원이 새우 미끼로 수중 턱을 노려 입질을 받았다. 그러나 끌어내는 과정에서 바늘이 펴져 놓치고 말았다.

이신호 회원은 손에 전해져 오는 느낌은 월척 이상급 붕어가 확실했다. 올해 첫 출조라서 겨우내 잠들어 있던 낚시가방을 꺼내 들고 왔는데 채비 점검을 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며 억울해했다.

이신호 회원이 다시 채비를 투척하고 있을 때, 상류에서 1.2m 수심을 노리던 김병배 회원이 입질을 받았다.

4.2칸 대에 새우를 꿰어 연안 수중턱 위에 찌를 세웠는데, 찌가 두 마디 올리는 듯하다가 물속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챔질했고 한다. 옆으로 째는 힘이 얼마나 세던지 4짜 붕어로 착각할 정도라 했다.

올라온 붕어는 한눈에 봐도 대물 붕어였고, 조심스럽게 뜰채에 담아 계측해보니 37.5cm 월척이었다.

허리급 월척이 낚였다는 소식에 회원들 모두 채비를 재정비하며 낚시에 몰입했다.

11시가 넘어선 시간. 건너편에 자리했던 이상현 회원의 찌의 찌톱이 다섯 마디 이상 올리고는 멈춰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찌톱이 옆으로 흐르는 찰나에 힘찬 챔질 소리가 났다.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킨 후 나와 뜰채에 담기는 붕어는 언듯 봐도 월척 붕어였다. 계측 결과는 36cm 월척이었다.

이상현 회원은 참붕어를 토막 내 바늘에 꿰었더니만 찌올림을 시원했다. 수심이 깊어인지 손맛도 대단했다.”고 말했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는 우측 제방 끝자락에 앉았던 김윤건 회원의 찌가 계속해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챔질을 하지 않기에 소리치며 불러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알고 보니 초저녁 내내 입질이 없자 새벽 시간을 노려보겠다고 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상현 회원이 급하게 뛰어가 자동빵으로 걸려든 붕어를 챔질했다. 한참 실랑이 끝에 뜰채에 담긴 녀석은 정확히 40cm짜리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외래어종이 유입이 안 된 토종터인데도 걸면 대부분 월척이었다. 그것도 허리급 이상이 주로 올라와 깜짝 놀랐다.

그 무렵 좌안 하류에 자리했던 함인철 회원 역시 입질을 받았는지 커다란 물보라가 들렸다. 그러나 플래쉬가 켜지는 순간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참붕어를 미끼로 사용했는데 너무 빠르게 챔질하는 바람에 정확하게 입걸림이 되지 않아 빠져버렸다고 했다.

반산지는 밤 10시부터 입질이 들어왔고 생미끼인 새우나 참붕어로 입질을 받으면 무조건 월척 이상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입질이 들어오자 회원들 모두 꼬박 밤을 새웠다.

마지막 입질은 새벽 4시에 이상현 회원에게 찾아왔다. 역시 참붕어 미끼를 토막 내 사용했으며 올라온 씨알은 34cm 월척이었다.

 

토종터인데도 새우, 참붕어에 월척 이상급 잘 낚여

여명이 밝아올 즈음 물색을 살펴보니 어제 오후보다는 확연히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조황을 살펴보니 4짜붕어 1마리를 포함해 월척이 네 마리였다. 확실하게 월척이라 생각됐지만 끌어내다가 터진 입질만 세 번이었다.

시기적으로 조금 이른 준계곡형에서의 하룻밤 낚시였지만 만족할만한 조과였다.

3월 둘째 주 현재 호남지방 현재 꽃샘추위는 사라지고 이상고온 현상이 두드러고 있다.

그만큼 수온도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낚시춘추 4월호가 발매되는 315일 이후에는 산란을 앞둔 붕어들이 대거 상류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토종터에서 대물을 노리고 싶은 낚시인이라면 서둘러 출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인근 안행지는 외래어종이 유입된 곳이라 붕어의 씨알이 굵게 낚이는 특징을 보인다.미끼는 글루텐과 옥수수가 잘 먹힌다. 상류에 수초대가잘 발달해 있어 봄붕어 산란장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가는 길남해안고속도로 고흥 I.C를 나와 고흥 방향으로 15번 국도를 이용해 26.4km 가면 오른쪽 도로변에 고흥 하나웨딩홀이다 후문을 나오면 안행저수지 상류이다. 시멘트 농로를 따라 산을 넘어 700m를 가면 반산지 상류에 닿는다.

 

네비게이션 주소전남 고흥군 두원면 용반리 1241-2

 

제방에 포인트를 잡았던 김윤건 회원이 건너편 연안을 노려 낚아낸 40cm 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5.2칸대를 사용한 갓낚시였다.

 

 

이상현 회원이 반산지 우측 중상류 소나무 아래 포인트에서 채비를 투척하고 있다.

참붕어를 삼등분한 미끼로 늦은 밤에 월척 두 마리를 낚아냈다.

 

 

취재일에 낚아낸 월척 붕어를 들어 보이는 취재팀.

좌측부터 유준재, 이신호, 김윤건, 함인철 회원이다.

 

 

반산지에서 필자가 사용한 수위벨 채비.

마르큐사의 신제품 노리텐떡밥을 단품으로 사용해 입질을 받았다.

 

반산지에서 대물 미끼로 사용된 참붕어.

현장에서 채집이 어려워 인근 저수지에서 채집했다.

 

 

입질이 없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펼쳐놓은 루프탑 텐트.

 

 

화보 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빨간색 본부석 텐트.

강풍을 피해 식사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물이 맑아 물속 지형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산지 상류.

긴 대를 이용해 수중턱 위에 미끼를 올려놓았을 때 입질이 잦았다.

 

 

참붕어 미끼로 35cm 월척을 낚아낸 이상현(좌측) 회원과 새우 미끼로 37.5cm 월척을 낚아낸 김경배 회원.

 

 

낚시인들의 발길이 전혀 없어 청정 토종터로 남아 있는 고흥 반산지 전경.

규모는 작지만 대물 자원을 많이 품고 있다.

 

 

낚시 후 낚시터 주변 쓰레기들을 수거한 취재팀.

낚시인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다보니 일반 쓰레기 외에는 찾기 어려웠다.

 

 

김윤건 회원이 밤 12시 경 낚아낸 40cm 붕어.

월척급 이상 붕어는 모두 밤 11~새벽 4시 사이에 낚였다.

 

 

다양한 길이의 낚싯대를 편성한 이상현 회원.

천류사의 운명(運命)대를 사용했다.

 

 

뗏장수초 포인트 대편성


여름에는 붙이고, 겨울과 봄에는 약간 떨어뜨려라


김중석[낚시춘추 객원기자, 천류 필드스탭 팀장]

 

뗏장수초는 여러해살이 정수수초로 상류에서 중류로 이어지는 비교적 수심이 앝은 연안을 따라 군집(群集)하며 사토질에 많이 분포하는 수초이다.

땅에 뿌리를 내린 뗏장수초는 배수를 하여 바닥이 말라 있을 때는 잔디밭처럼 보이고 다시 물이 차오르면 마디마디에서 다시 뿌리가 나오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줄기 수초이다.

  뗏장수초대 역시 잘 닦여진 포인트보다는 생자리 포인트가 유리한데, 뗏장수초는 질기고 수초낫으로 잘 잘리지 않기 때문에 낚시인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수초작업이 만만치 않다.

어느 정도 수초작업은 필수이지만 작업을 가급적 최소화하고, 줄기를 자르는 것보다 바닥을 깨끗하게 긁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계절에 따라 뗏장수초에 찌를 세우는 포인트도 달라진다. 5월에는 새롭게 자란 뗏장수초 줄기가 뻗어나가면서 새롭게 붕어의 은신처를 만들어주고 수서곤충 등을 불러 모은다. 붕어들이 본능적으로 취이 목적으로 수초밭을 누비거나 뗏장수초 언저리를 회유하게 되므로 뗏장수초에 붙여 찌를 세우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겨울~봄 시즌에는 뗏장수초에서 50cm~1m 가량 떨어져 찌를 세워야 입질 받기가 수월해진다. 삭은 청태나 낙엽, 수초찌꺼기, 물때들이 물위에 떠밀려 다니다가 연안의 뗏장수초 언저리에 걸려 바닥에 쌓이는 경우가 많아 미끼가 함몰될 뿐만 아니라 붕어가 수초 가까이에 잘 붙지도 않는다.

  그리고 뗏장수초 포인트는 뗏장이 좁은 지역보다 넓게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좋다. 이러한 포인트는 낚시인이 연안 가까이에 앉아도 붕어가 인기척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하기에 좋은 방어막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곳에선 넓은 뗏장수초를 넘겨 칠 수 있는 장대가 필요한데, 요즘은 낚시인들마다 긴 낚싯대를 많이 사용하는 패턴이라 과감하게 공략할 수 있다.

 또, 뗏장수초 끝자락에 마름과 같이 서로 다른 수초군이 만나는 지점은 특급 포인트가 된다. 이때는 짧은 대를 중앙에 배치하고 좌우측에는 뗏장수초 라인을 따라 긴대로 공략하되 가급적 뗏장수초 끝자락에 찌가 바짝 붙도록 찌를 세워야 한다.

  또, 수초제거를 할 필요 없이 찌를 하나 정도 세울 수 있는 자연적인 구멍이 형성되어 있으면서 저수지 중심부 방향으로 수초지대가 통로 형식으로 조금이라도 열려 있다면 훌륭한 포인트가 된다. 이러한 곳은 바닥이 뗏장수초가 자랄 수 없는 암반이거나 단단한 황토지역이나 자갈이 많은 토질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바닥이 깨끗하므로 붕어가 먹이활동을 즐겨 하는 곳이다. 토종터일 경우에는 새우나 참붕어 미끼로 공략하고 외래어종이 유입된 낚시터라면 글루텐떡밥을 이용해 공략하면 좋은 조황을 만날 수 있으므로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이다.

  또한, 평지형 저수지 제방이나 준계곡형 저수지의 중류에 보면 뗏장수초가 넓게 형성되지 않고 연안에서 좁은 폭으로 띠를 이루면서 자라고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포인트도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이다.

이런 포인트는 뗏장수초가 밀생하지도 않으면서 자갈이 많이 섞인 사토질의 지질을 갖춘 곳이 특징으로 약간의 경사도가 있는 지형이라 보면 되는데 물가에 접근해 앉은 것보다도 갓낚시 개념으로 물가에서 적당히 떨어져서 낚싯대를 펼쳐야 한다. 낮에 깊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붕어들이 먹이 활동을 위해 밤이 되면서 연안 뗏장수초 언저리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뗏장수초가 중앙부까지 분포되어 있는 곳은 가뭄에 자주 마를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방권에 수심이 앝은 곳은 붕어의 개체수가 적겠지만, 수심이 깊고 뻘층이라면 대부분의 붕어는 가뭄에도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곳은 바닥이 자주 말라 자외선 소독이 되고 새롭게 뗏장수초나 육초들이 자라게 되고 다시 물이 차오를 때는 각종 미생물들의 서식처가 되므로 이를 알고 있는 붕어들이 본능적으로 몰리기도 한다.





영원한 낚시인 허송 서찬수님

 

김중석[낚시춘추 객원기자. (주)천류 필드스탭 팀장]

 

추위도 멈추었는데 곳곳에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가.

()대의 낚싯대를 휘두르며 저수지의 건너편 가장자리를 노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가에 선하게

기억이 나는 서찬수님.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지난 216(양력)1주기가 되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우리 낚시인들을 대해줬던 서찬수님이 보고 싶어서 그가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봤다.

슬픈 마음에 무엇엔가 홀린 듯 우두거니 서서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흔적도 없고 적막감만 감돌았는데 아마도 좋은 세상에서 아프지 아니하고 붕어들과 대화 하느라 내가 오는지 가는지 몰랐을 것 같았다.

수많은 낚시인들이 슬퍼하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물가에는 너무나 조용했다.

내게는 영원한 낚시인으로 가슴속 깊이 남아 있는 낚시인.

서찬수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또한 많은 낚시인들이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

 

 

 

 

 

낚시춘추 특집

제방을 노려라 (2016년 10월호)

김중석[낚시춘추 객원기자. (주)천류 필드스탭 팀장]

 

 

 

 

 

추모특집 (낚시춘추 2016년 4월호에서 발췌)

 

 

서찬수, 갓낚시의 별이 지다

 

허만갑 기자 

 
갓낚시를 창안한 붕어낚시인 서찬수씨가 지난 2월 16일 새벽에 간암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54세.

경남 창원시 상복공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영결식에는 장녀 서수정씨, 동생 서인수씨를 비롯한 유가족과 조객 수십 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경남 사천시 서포면의 한적한 소류지에 뿌려졌다. 

 서찬수씨는 마산에서 태어나 경남 지역 소류지를 무대로 갓낚시를 정립하였고 잡지와 방송을 통해 그의 낚시철학과 기법을 전파하며 많은 낚시인들에게 교감을 주었다.

고인은 작년 11월에야 암세포가 손쓸 수 없을 만큼 퍼진 것을 알았고 그 후 창녕군 부곡면의 저수지 위에 작은 집을 짓고 몇몇 조우들과 조용히 교유하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요절에 가까운 그의 죽음은 많은 낚시인들에게 충격을 던졌고 비보를 접한 낚시인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았다. 송귀섭, 박현철, 윤기한, 배성규, 성제현, 김진태, 김중석, 김진우, 임연식, 이왕수, 이택상씨 등 유명 낚시인들과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부산경남 낚시인들이 빈소를 가득 메웠다. 서찬수씨의 팬클럽인 천지어인 회원들이 상주하며 빈소를 지켰다. 서찬수씨가 출연했던 FTV에선 추모 프로그램을 특별 편성해 방영했다.  
 천지어인의 조계삼 회장은 “낚시계의 큰 별 허송(虛送) 서찬수님을 보내며 우리 모두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언제 보아도 동네의 형님 같이 격 없고 수수하기만 했던 허송님과 또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비보랍니까. 허송님은 떠나셨지만 천지어인은 변함없이 갓낚시를 계승하고 허송님의 친환경적 낚시이념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첫 만남

 내가 서찬수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3년 5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의 하내지 취재였다.

나는 낚시춘추에 입사한 지 갓 1년 된 신입기자였고, 서찬수씨는 그날 동행한 마산 제일낚시 회원들 중 가장 젊었다.

하지만 막내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특별대우를 받는 듯 제일낚시 임용길 사장은 서찬수씨를 가장 좋은 최상류 갈대밭에 앉혔다.

그날 밤 서찬수씨만 30cm 붕어를 낚았고 나머지는 잔챙이 구경에 그쳤다.

그러나 나는 포인트가 좋아서 대어를 잡았을 뿐이라 여겼고 그의 낚시실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다만 그의 낚싯대는 눈길을 끌었는데 대당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시마노 주문봉 중층대 세트를 구비해 새우낚시를 하고 있었다. ‘돈이 많구나, 국산대도 좋은 게 많은데 펴고 접기도 불편한 일본 꽂기대로 새우낚시를 하다니, 별 사람도 다 있구나’ 싶었다.

나는 제일낚시 임용길 사장과 취재를 했고 서찬수씨는 별 말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와 나눈 대화는 기억나는 게 없다.
 서찬수씨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6년 후, 99년 3월 마산 회성동의 한 지하다방에서였다. 꽤 비싼 아르마니 니트를 입고 있었지만 행색은 전에 비해 남루해보였다. ‘비디오사업을 크게 해서 잘 나갔는데 밑에서 일하던 놈이 돈을 들고 튄 데다가 보증까지 잘못 서서 쫄딱 망하고 이혼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임용길씨에게서 들은 터라 그리 보였는지도 모른다. 임용길씨는 “서찬수가 무일푼이 된 뒤 소일거리로 찌를 만들고 있는데 솜씨가 좋다.

찌 팔아서 용돈이라도 벌 수 있게 기사로 실어서 좀 띄워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서찬수씨와 나는 다방을 나와 창원시 팔용동에 있는 그의 반지하 사무실로 갔다. 찌공방과 침실, 주방까지 있는 20평 남짓한 사무실이었는데 간판 이름이 웃겼다. ‘허송세월’
“참 미친놈처럼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 와서 다 털어먹고 뒤돌아보니 낚시는 허송세월이 맞구나 싶어서 이리 지었네요.”
 나는 사무실 이름이 좋았다. 그날 밤 우리는 낚시 얘기로 밤을 새웠다.

서찬수씨는 안 해본 낚시가 없었다. 민물낚시만 한 게 아니라 거문도, 추자도, 태도 등 유명한 섬은 다 다녔고 갯바위낚시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의 낚시행각은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겨울에 전라도로 붕어낚시를 가면 서너 명이 갹출해서 봉고차를 빌리고 기사까지 채용했어요.

일행 중에서 운전을 하면 그 사람은 낚시를 못하잖아요. 그렇게 한 번 나가면 최하 보름에서 한 달씩 있다 왔어요.

한 번은 낚시 갔다 집에 오니까 방에서 모르는 여자가 나와요. 나도 놀라고 그 여자도 놀랐죠.

알고 보니 와이프가 화가 나서 방을 내놓고 이사를 가버린 겁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 수가 있나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여기저기 전화해보니까 그래도 아주 헤어질 마음은 아니었던지 우리 집(시댁)에 와 있더라구요. 그래서 안심하고 그 길로 또 낚시를 갔죠.”
그날부터 나는 서찬수씨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홀아비와 노총각의 딱 떨어지는 궁합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부산과 울산의 낚시인들을 창원의 허송세월로 불러들였다. 그러면 서찬수씨는 그들을 비장의 소류지로 데리고 가서 손맛폭탄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현장을 카메라로 찍어서 낚시잡지에 실었다. 잡지를 본 낚시인들까지 허송세월을 찾기 시작했다.

서찬수씨의 억새찌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지만 끼니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낚시인들이 밥도 사고 술도 샀다. 마산창원에 사는 서찬수씨의 친구와 선후배들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언제나 놀라웠던 서찬수의 낚시

 서찬수씨는 낚시터에 가면 먼저 자리를 잡는 법이 없었다. 남들에게 포인트를 다 양보하고 맨 마지막으로 대를 폈다.

욕심을 내는 사람에겐 많이 걷는 자리나 생자리를 권했고, 휴식을 원하는 사람에겐 편한 포인트를 권했다.

그러나 대부분 각자 알아서 포인트를 선정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서찬수씨가 앉는 포인트는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는 곳이었다.

 낚싯대를 두 대도 펴기 힘든 옹색한 자리, 의자를 놓을 수 없는 비탈에 앉아 낚시를 하는데 대를 펴는 모양새도 볼품없었다. 받침대와 뒤꽂이는 높이가 제각각이고 수면의 찌 높이도 들쑥날쑥한데다 낚싯대라고 여남은 개 있는 것이 메이커가 다 달라서(주문봉 세트는 팔아치운 듯했다.) 정돈된 모양새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침에 보면 그의 조과가 늘 1등이었다. 그러니 모두 놀랄 수밖에!
 서찬수씨는 낚시를 오래 하지도 않았다. 앉아 있는 시간보다 랜턴을 켜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몰아치기의 명수였다. 함양 덕암지에서는 자정이 넘도록 한 마리도 못 낚고 있다가 새벽에만 50마리를 낚아 올렸다.

그는 또 물소리를 안 내고 낚는 재주가 있었다.

천지어인 회원 이성호씨는 “내가 신나게 낚을 동안 찬수 형님은 낚는 기척이 전혀 없어서 속으로 기고만장했는데 날이 밝아보니 마릿수도 나보다 많고 씨알은 평균 한 치가 더 굵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한 적 있다.
 서찬수씨는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그의 낚시를 배우고자 오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설명하지 않았다. 서찬수씨는 잘난 체하는 사람을 싫어했고 낚시를 너무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도 싫어했다.

그에게 낚시는 놀이였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즐기는 한 형태였다. 그런 그의 태도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었고 허송세월을 낚시인의 사랑방, 세상사에서 격리된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갓낚시의 전파

 나는 2년 동안 서찬수씨와 함께 낚시를 다니면서 그의 독특한 낚시스타일을 관찰하였고 결국은 매료되었다.

서찬수의 낚시는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었는데, 낮에 보면 바닥이 보일 만큼 얕은 수심의 가장자리를 노린다는 것과 파라솔, 받침틀은 물론 의자까지 제거한 채 인기척을 없앤 낚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얕은 물가’와 ‘무인기척’의 키워드로 다시 접근한 새우낚시는 놀라운 조과를 안겨주었다.

그때까지 새우낚시는 마릿수가 없는 지루한 기다림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나 갓낚시는 새우를 쓰면서도 떡밥보다 더 많은 마릿수를 낚았다. 그리고 월척붕어가 너무 쉽게 낚였다. 나는 베드로가 예수의 복음을 전한 것처럼 이 신기한 낚시의 전도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01년 봄, 나는 서찬수씨의 낚시에 ‘갓낚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진주 이반성면 포실지 제방에서 갓낚시로 월척을 낚는 현장을 찍어서 월간낚시 5월호에 소개했다.

나는 그때 독자들로부터 욕먹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해괴한 걸 낚시라고 소개했느냐’는 항의가 뒤따를 줄 알았다. 그런데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을 빗나갔다. 걸려온 전화는 “따라 해보니 정말 월척이 낚이더라”는 칭찬 일색이었다.

5월호부터 11월호까지 갓낚시 현장화보는 월간낚시 지면을 장식했고 서찬수는 대물낚시의 새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기사를 보고 전국에서 낚시인들이 허송세월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갓낚시 창시자라 불렀다.

그러면 서찬수씨는 쑥스러워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그의 소매를 억지로 잡아끌지 않았으면 갓낚시는 아직도 경남의 깊은 숲속에 묻혀있을 거라고.  

 

허송세월의 하루

허송세월의 하루는 분주했다. 밤낚시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오전 10~11시.

잠시 소파에 누워 눈 붙일 시간도 없이 오후 2~3시면 새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배달커피를 시키는 바람에 허송세월은 팔용동 다방들의 최대고객이 되었다. 오후 4~5시면 손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출조에 나섰다. 주말에는 두세 팀이 동시에 찾아와 소류지를 여러 군데로 나누어 나갔는데 낚시인들은 서로 서찬수씨와 동행하고 싶어 했다.

서찬수씨가 골라주는 저수지들은 죄다 A급이었지만, 직접 동행하면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

그것은 2차, 3차, 4차로 월척을 낚을 때까지 이어지는 소류지 순례였다. 붕어낚시 황금시즌인 봄에는 대박조황을 찾아서 하룻밤에 저수지 7곳을 돈 적도 있다. 대 펴고 30분 안에 입질이 없으면 “철수” 또는 “이동”이었다.

함안군에서 초저녁 낚시를 하고 진주시에서 야참을 먹고 의령군에서 새벽손맛을 보는 날이 허다했다.

그것은 서찬수씨가 각 저수지별로 붕어가 잘 낚이는 시간대를 정확히 꿰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몽유병적 방랑에 적응하지 못하고 “못 낚아도 좋으니 좀 진득하게 앉아있자”는 낚시인들이 많았지만 서찬수씨는 “붕어를 낚는 게 아니고 저수지를 낚는 과정”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서찬수씨는 마음속에 짚이는 소류지가 있으면 반드시 찾아가서 낚시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 결과가 확인되면 또 다른 소류지로 탐사를 떠났다. 오늘 많이 낚았다고 내일 또 그곳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낚시인들은 서찬수씨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 무궁무진한 소류지 정보의 원천을 궁금해 했다. 울산의 정모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서 회장(낚시인들은 서찬수씨를 이렇게 불렀다.)이 죽고 나면 이 저수지들이 다 묻힐 텐데 그게 걱정이다.”
 허송세월에는 근심이 없었다. 날마다 먹고 자고 낚시만 하는데 걱정이 있을 리 없다.

오직 고민이 있다면 오늘밤 진한 손맛을 보기 위해 또 어느 못으로 가나 하는 것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경남에는 소류지낚시가 확산되기 전이어서 아무데나 가도 무주공산이요 월척밭이었다. 
 허송세월에는 다툼이 없었다. 낚시점이 아니어서 금전이 오갈 일이 없고 낚시회도 아니어서 위계질서니 정출이니 하는 문제로 의견이 갈릴 일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서찬수를 중심으로 모였으되 각자 낚시를 즐길 뿐이었고, 모든 결정은 서찬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당장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했다. 서찬수씨는 낚시, 조과, 손맛보다 낚시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날그날 모인 낚시인들 중 오늘은 이 사람이 밥을 사면 내일은 저 사람이 미끼를 샀다.

월척을 낚으면 커피를 사고 4짜를 낚으면 노래방을 쏘았다. 허송세월에 오면 혼자서는 낚시를 즐길 수 없음을 누구나 깨달았다.
 나는 낚시인에게 파라다이스가 있다면 그곳이 허송세월일 것이라 생각했다.

허송세월은 음습한 팔용동 반지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남의 저수지를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있었고 산속 소류지 곳곳에 있었다.

아침에는 꽃들이, 밤에는 노루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허송세월을 찾는 모든 낚시인들이 이 나태함과 비생산적인 분위기에 중독되었다. 이삼일 예정으로 왔다가 열흘 넘게 머물다 가는 이들이 많았다.  

 

낚시방송의 스타로

“사람들이 찾아올 때 낚시점을 차려서 돈을 벌어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서찬수씨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금전관계로 얽매이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나 2005년 겨울에 서찬수씨는 창원시내를 벗어난 북면 화천리에 ‘세월낚시’란 상호의 낚시점을 차렸다. 한사코 낚시점은 않겠다던 그가 왜 생각을 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이가 드니까 노후가 걱정되었을 수도 있고, 이혼한 뒤 전 부인과 함께 살던 딸의 학비를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당시 만나던 여자와 재혼하려 했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서찬수가 낚시점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우들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농약가게 옆 10평 남짓한 공간에 소품 몇 개 걸어놓은 초라한 가게였지만 매출은 큰 낚시점 못지않았다.

특히 낚시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손님은 더 늘었다. 서찬수씨는 꽤 벌었고 딸과 전 부인에게 대학원 학비와 생활비까지 부쳐 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처럼 서찬수씨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조선일보에서 발간하던 월간낚시가 폐간되고 주간조선으로 옮기면서 낚시기자 생활을 그만 둬야 했기 때문이다. 1년 후 낚시춘추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지만 일선기자가 아니라서 예전처럼 창원에 내려가 며칠씩 머물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그동안 월간낚시에 연재했던 갓낚시 기사들을 모아서 단행본을 제작했다. 그리고 서찬수씨가 초보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을 한 Q&A를 붙여서 <월척 쉽게 낚는 책-서찬수의 갓낚시>를 출간했다.
 서찬수씨가 낚시방송에 처음 출연한 시기가 2008년인지 2010년인지 잘 모르겠다.

FTV <서찬수의 갓낚시> <월척특급>에 출연하기 전에 FS-TV에도 몇 번 등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방송출연은 서찬수를 전국구 스타로 부각시켰다. 2009년에 서찬수 팬클럽 ‘천지어인’이 결성되었고 1년 안에 전국 5개 지부를 가진 클럽으로 성장했다. 
 사실 ‘서찬수가 TV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스타탄생을 확신했다.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불세출의 낚시실력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과연 서찬수는 출연하자마자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시청자들은 그의 촌스런 패션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까지 매력으로 받아들였다. 메기를 낚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구워먹고 의자를 들어 비를 가린 채 쭈그리고 앉아 낚시를 하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희대의 캐릭터에 급관심을 보였다.

낚시인들은 정형화된 방송 출연자들과 완전히 다른 이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예상치 못한 캐릭터, 첫 인상은 어설퍼 보이는데 고기를 너무 잘 낚아! 도시촌놈들에게 말없이 한 수 보여주는 노련한 동네형의 이미지로 서찬수씨는 확고한 팬층을 잡았다.

요즘 사람들은 세련된 주류보다 거칠지만 진솔한 비주류 문화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찬수야말로 가장 유쾌한 비주류의 상징이 되었다. 

 

마지막 만남

1월 3일이 내가 서찬수씨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혼자 가기가 두려워 부산의 후배 김종호씨와 같이 갔다. 시한부 선고를 받아놓은 그를 보는 것이 겁이 났다.

창녕 부곡면의 한 저수지 위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서찬수씨는 노모와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현관에서 모친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리가 온 걸 알았을 것이다.

방에 들어가니 한쪽 벽 모퉁이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사내가 기대어 앉아 우리를 쳐다보았다.

몸은 어떠냐, 괜찮다, 통증은 없느냐, 없다, 음식은 잘 먹느냐, 잘 먹는다… 몇 마디 나누고 슬그머니 돌아누운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나는 그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나도 울었다. 우리가 함께한 2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서찬수씨는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우리는 옛날에 셋이서 월척을 타작했던 저수지들을 하나씩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국도 간여에서 상어를 걸어 발만 동동 구르던 얘기도 나왔다. 종호는 대마도 야영낚시를 가자며 열을 올렸다.  
“봄 되면 또 낚시 가야죠.”
“가야지! … 남해도에 진짜 가야 할 곳이 한 군데 있는데.”
 오후가 되자 천지어인의 조계삼 회장과 김주수 회원이 찾아왔다. 이날따라 볕이 너무 좋아서 저수지 제방까지 한 바퀴 걸었다.

철모르는 매화가 활짝 피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테라스에서 오리고기를 구워 다함께 나눠먹었다. 
병은 의사가 진단한 대로 에누리 없이 진행되었다. 1월 21일 경남 양산의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이 왔고, 설 전에 병문안을 갔던 광주 월산낚시 나광진씨(서찬수씨와 함께 월척특급을 진행하였다.)가 ‘사람을 못 알아보더라’고 했다.

2월 16일 새벽 3시, 서찬수씨는 우리 곁을 떠났다.
 서찬수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서찬수는 잊을 수 없는 친구, 대체할 수 없는 스타로 남을 것이다.

그보다 더 붕어를 잘 낚고 방송을 더 잘하는 낚시인은 있을지 몰라도 그만큼 꾸밈없는 웃음과 큰 울림을 주는 낚시인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과 달리 낚시라는 전문분야의 스타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스타 한 사람의 죽음은 낚시산업계로서도 큰 손실이다.

서찬수를 보고 낚시를 시작하고 그의 방송을 보고 출조할 마음을 낸 낚시인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서찬수가 남기고 간 의미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가 갓낚시의 영향을 받았다.

아주 얕은 수심, 아주 가까운 연안까지 노리는 시도는 서찬수 이전에는 없었다. 물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지거나 제방 위에 올라앉아 하는 낚시도 전에는 없었다.

살아생전 그가 남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지금도 나를 툭툭 찌른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낚시, 하지 마라.  인생은 짧고 낚시할 날은 적은데 진짜 해보고 싶은 낚시를 해라.

그러다보면 시행착오도 있지만 그게 낚시 아이가! 낚일지 안 낚일지 몰라야 낚시지, 다 알고 하는 낚시가 그게 낚시야?” 

 

 

서찬수씨의 영정.

 

 

생전의 서찬수씨.

FTV <월척특급>을 통해 보여준 그의 친근한 매력은 뛰어난 낚시실력과 어우러져 많은 팬들을 낳았다.(사진 천지어인)

 

 

낚시춘추 93년 6월호에 실린 서찬수씨의 모습. 당시 31세의 앳된(?) 얼굴로 나와 처음 만났다.

 

 

천지어인 회원들과 함께 하던 건강한 서찬수씨의 모습.

 

 

따가운 여름볕을 피해 나무그늘에 기대어 앉은 서찬수씨.

자신의 낚시인생을 '허송세월'이라 부르며 세평에 초연했던 그는 낚시보다 낚시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다.(사진 천지어인)

 

 

창원시 북면에 있던 세월낚시. 이름처럼 이제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고인의 따님이 아버지가 즐겨 찾던 저수지 물가에 유해를 뿌리고 있다.

죽어서도 물가를 떠나기 싫었는지 "한적한 저수지에 내 뼈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추모특집 (낚시춘추 2016년 4월호에서 발췌)

 

서찬수가 직접 답한 Q & A 

 “갓낚시, 일단 실천에 옮겨보세요”

 

허만갑 기자 


서찬수가 직접 답한 Q & A
 이 글은 단행본 <월척 쉽게 낚는 책-서찬수의 갓낚시> 권말에 수록된 갓낚시 Q&A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갓낚시에 대해 서찬수씨가 직접 쓴 몇 안 되는 글이다. 낚시방법에 대한 설명이지만 붕어낚시에 대한 고인의 철학이 글 속에 묻어 있다.


Q정말 물가에서 월척붕어가 낚입니까?
A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의심만 하지 말고 일단 실천에 옮겨 보세요.

여러분 중 자기도 모르게 갓낚시를 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컨대 부채꼴 모양으로 낚싯대를 펼쳤을 때 맨 양쪽 두 대의 찌는 물가에 근접하게 되죠. 혹시 그 찌에서 붕어를 낚은 적은 없습니까?  또 아주 짧은 칸반대에 굵은 붕어를 낚은 적은 없습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물가에서 붕어를 잡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다만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우연이 아닙니다.

 

Q항상 저수지 가장자리만 노립니까?
A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얕은 상류에선 긴 대로 저수지 중앙부도 노립니다.

다만 수심이 1m 미만인 곳을 주로 노리죠. 그리고 물속에 얕은 둔덕이 있으면 역시 긴 대로 그 둔덕 위에 미끼를 올립니다. 또 초저녁엔 물가를 집중적으로 노리지만 밤 12시부터 아침까지는 1.5~2m 수심까지도 골고루 노립니다. 

 

Q가에서도 붕어가 낚이지만, 그래도 큰 붕어는 깊이 노린
긴 대에서 잘 낚이던데요?
A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큰 붕어는 긴 대에서 잘 낚이죠.

그러나 그 이유가 깊은 곳을 노려서만은 아닐 겁니다. 그보다 인기척을 감지한 붕어가 짧은 대의 사정거리까지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사실은 물속에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큰 붕어가 낚인 곳은 뭔가 특징이 있었을 겁니다. 수중 장애물이 있거나 말풀이 자라 있거나 조금이라도 들쑥날쑥한 요철이 있지는 않았습니까?
또 하나는 님이 새벽에 낚았을 경우입니다. 갓낚시는 해거름~밤 11시에 잘 되는 낚시입니다.

새벽과 아침에는 저도 깊은 수심을 노립니다. 그 이유는 새우들이 초저녁에 물가에 몰렸다가 밤이 깊을수록 깊은 곳으로 이동하며 붕어도 따라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2~3m 수심에서 낚지는 않았겠죠? 월척은 깊어도 1.5m 안팎에서 낚이지 아주 깊은 곳에서 잘 낚이진 않습니다.

 

Q모든 낚싯대를 다 연안에만 붙입니까?
A 5대를 펼칠 경우 3대는 연안에 붙이고, 2대는 약간 안쪽에 펼칩니다.

간혹 붕어가 초저녁부터 깊은 수심에서만 낚일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 한여름, 아주 물이 맑은 곳, 깊은 곳에 장애물이 빠져 있는 곳이라면 얕은 물가에선 입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또 밤 12시 이후엔 한두 대만 연안에 남겨두고 나머지 대들은 조금씩 깊은 수심으로 옮깁니다.

 

Q정말 뒤로 물러나야 할 만큼 붕어가 인기척에 민감합니까?
A 붕어가 잘 낚일 때는 떠들고 불을 비춰도 잘 낚이죠.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상황입니다.

혹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자리만 비우면 입질을 하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입질이 없는 경우, 낚시자리에서 떨어져 있을 때 입질해 챔질하려고 걸어가면 찌가 멈추는 경우, 저수지에 일찍 도착해 만반의 준비를 한 날은 붕어가 잘 낚이지 않는 경우, 입질이 없어서 한 대만 들고 옮겼더니 연달아 낚이던 붕어가 낚싯대를 더 가져와서 본격적으로 낚시하려 하면 입질이 끊기는 경우, 여러 사람이 밤낚시를 하는데 하필이면 일찍 자러 들어간 사람의 찌에만 입질이 오는 경우 등등… 그런 것들이 붕어가 인기척을 강하게 느끼는 사례라고 봅니다.
월척을 잘 낚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통된 습관이 있더군요. 자리에 앉아 다리를 떨거나, 쉴 새 없이 손을 꼼지락거리거나, 의자를 삐걱삐걱 흔들거나 하는 산만함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일수록 물가에서 멀리 물러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낚시인들로 늘 붐비는 저수지의 붕어는 인기척에 덜 민감합니다. 인기척에 적응이 된 것이죠. 반대로 인적이 드문 소류지의 붕어는 인기척에 아주 민감합니다. 붕어도 습관의 동물입니다. 함안군 군북면에 철길 옆 소류지가 있는데 이곳의 붕어들은 기차가 굉음을 내고 지나갈 때 잘 낚입니다.

 

Q갓낚시를 촬영한 TV 화면을 보니까 물가에 다가앉아 낚시하는 적도 많던데요?
A 사실 물가에서 낚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생자리를 즐겨 찾는데 그런 자리는 뒤에 나무나 수풀이 있어서 물러날 수 없는 지형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물가에 앉아도 찌를 세우는 자리는 건너편 물가이거나, 물속의 얕은 둔덕이거나, 그 밖의 얕은 곳을 찾아서 노립니다.
 의자를 놓는 방식도 일반낚시 방법과 다릅니다. 보통 의자부터 놓고 낚싯대를 펼치지만 갓낚시는 낚싯대부터 던져 놓고 그에 맞는 자리에 의자를 놓습니다.

그러다보면 물가에 의자를 놓을 때도 있고, 물가에서 몇 m 뒤에 놓을 때도 있고, 수면에서 높은 곳에 의자를 놓을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노리고자 하는 포인트에 인기척을 최대한 적게 전달할 수 있는 곳에 앉아서 낚시하면 됩니다.

 

Q물가에서 붕어가 안 낚일 때도 있지요?
A 그렇습니다. 사람 손을 많이 탄 유명한 저수지, 호황소문을 듣고 낚시인이 모여들어 소란스런 저수지, 물가보다 물 안쪽에 수초대 등 더 멋진 포인트가 형성된 저수지의 붕어들은 가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생자리를 찾으면 갓낚시가 되며, 갓낚시를 하든 하지 않든 계속 붕어가 낚인 자리보다 생자리에서 더 큰 재미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꾸 의심하지 마시고 시험 삼아 한번 물가에 미끼를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Q기사를 보면 20cm 수심까지 월척이 올라온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그런 수심에서 월척을 낚아보셨나요?
A 20cm보다 더 얕은 곳에서도 월척을 낚아봤습니다. 찌를 던지면 20cm 수심이라도 실제 깊이는 그보다 더 깊습니다. 바닥에 아주 미세한 뻘의 앙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앙금으로 수심을 체크하면 20cm이지만 붕어는 그 앙금 속에 반쯤 파묻혀 있으므로 실제 붕어 배가 닿아 있는 수심은 30~40cm일 수 있습니다.

간혹 낮에 물가를 걷다가 뻘물이 생기는 걸 볼 수 있는데 뻘보다 몇 배 가벼운 앙금 속에 있던 붕어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것입니다.

 

Q갓낚시를 몇 번 해봤지만 잘 안되던데요?
A 물가라고 아무 물가에서나 붕어가 낚이는 건 아닙니다. 물가에도 엄연히 포인트가 따로 있지요.

물가에서도 수중턱이나 연안장애물을 찾아야 하고, 더러는 물가를 벗어나 안쪽의 수중둔덕에도 찌를 세워야 합니다.

물속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눈은 이 책을 읽어보시면 어느 정도 뜨일 것입니다. 요즘은 낚시터에서 갓낚시를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물가에만 찌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갓낚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책을 되풀이해서 읽어 보면 당신도 갓낚시 도사가 될 수 있습니다.

 

Q갓낚시는 초저녁에 입질이 잦다는데 저는 월척 입질을 새벽에 많이 받았거든요?
A 낚시방법과 포인트가 저와는 달라서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물붕어는 어느 곳이든 낚시를 시작할 때 입질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면 대물은 힘이 세니까 가장 먹잇감이 많은 사냥터인 물가를 선점하여 낚시인이 오기 전에 물가에서 사냥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기척이 가장 적은 낚시의 스타트타임에 큰 붕어가 입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낮에 사냥하는 붕어라면 동틀 무렵~아침에, 밤에 사냥하는 붕어라면 해거름~초저녁에 물가에서 입질합니다.
만약 님께서 새벽에 입질을 받았다면, 그곳의 붕어가 낮에 사냥하는 붕어이거나, 초저녁부터 너무 깊은 수심만 노렸거나, 그 낚시터에 꾼들이 많아서 초저녁엔 소란하다가 새벽에 조용해졌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대개 깊은 수심만 노릴 경우, 초저녁 물가의 피크타임을 놓치고 갓낚시에서 ‘2부타임’이라 부르는, 붕어가 깊은 수심에서 먹이를 찾는 자정~새벽에 월척을 낚는 사람이 많습니다.

 

Q수온이 낮을 때는 그래도 깊은 곳을 노리는 것이 낫지 않나요?
A 밤낚시냐 낮낚시냐를 분명히 한 다음에 말해야겠습니다.

낮낚시라면 수온이 낮을 땐 깊은 곳을 노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늦가을~겨울에는 붕어가 깊은 곳에서 잘 낚입니다. 그러나 초봄에는 낮에도 얕은 곳이 낫습니다.

얕은 곳이 일조량을 많이 받아 수온이 빨리 오르기 때문입니다.
한편 밤낚시는 수온이 낮을 때도 얕은 곳을 노리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얕은 곳의 수온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물은 온도가 낮을수록 비중이 높아져서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깊은 곳의 수온이 더 낮습니다. 그래서 갓낚시는 수온이 높은 여름보다 오히려 수온이 낮은 봄과 늦가을에 더 잘 됩니다. 

 

Q소류지 낚시를 즐기시던데, 큰 저수지에선 갓낚시가 잘 안 되나요?
A 이곳 경남은 대형지가 적고 소류지가 많아서 그리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형지도 갓낚시가 잘 됩니다.

오히려 대형지는 붕어 양이 많고 포인트 선택의 폭이 넓어서 자리만 잘 찾으면 더 좋은 조황을 보입니다.

최근 저는 하동군 진교면 송원지(6만평)에서 갓낚시로 재미를 보았는데 낚시인들은 중류에 몰려 있고 최상류는 아주 얕아서 그런지 텅 비어 있더군요. 그러나 상류에서 긴 대를 던지니까 월척이 쑥쑥 올라왔습니다.
특히 충청도에서는 유명한 대형지에서 갓낚시로 재미를 보았다며 좋은 기법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전화해오는 낚시인이 많습니다. 대형지에서도 소란스런 곳이 아니라면 갓낚시가 잘 됩니다.

 

Q혹시 경남에서만 통하는 낚시방법 아닙니까? 다른 지방에서도 해보셨나요?
A 저수지가 있고 붕어가 있으면 어디든 가능합니다.

경북, 전남, 충남의 갓낚시 동호인들과 만나 그 지역에서 갓낚시를 해보았는데 대부분 잘 되더군요.

그분들도 기존의 낚시보다 더 붕어가 잘 낚이고 재미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타 지역의 낚시인들께 이 낚시를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각 지방마다 낚시터의 지방색이 있으니 그에 맞춰 낚시를 즐기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냥 제 낚시를 즐기고 싶을 따름이고, 각자 원하는 스타일로 즐길 수 있기 바랍니다.

다만 갓낚시가 알려진 덕에 많은 낚시인을 알게 되었고, 제가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에게서 호평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고 그렇습니다. 낚시란 게 즐기는 취미 아니겠습니까? 붕어를 낚으며 즐길 수 있다면 낚시방법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Q갓낚시를 꼭 해야 할 상황과 갓낚시가 잘 안 되는 상황을 알려주세요.
A 미답의 소류지, 신생지는 갓낚시가 아니면 호황을 맛보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갓낚시가 잘 안 되는 곳은 유료터처럼 낚시인이 집중된 곳입니다.

 

Q어떻게 물가에서 붕어가 잘 낚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나요?
A 96년쯤인가, 제가 속해 있던 마산의 낚시회가 함안군 칠원면의 한 소류지에서 월척이 터졌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소문이 나서 쓸 만한 자리에는 다 낚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빈자리에는 함께 간 회원들이 앉고, 저는 작은 골 최상류의 바닥이 보일 만큼 얕은 곳에 앉게 되었죠.

그런데 그 날 밤 소류지 전역에서 낚인 월척보다 저 혼자 낚은 월척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우연의 일치겠지 생각하면서도 반신반의하며 다른 저수지에서도 바닥이 보이는 자리에서 낚시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됐습니다.

 

Q달이 밝은 밤에도 갓낚시가 잘 됩니까?
A 보편적으로 달이 밝으면 갓낚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갓낚시의 포인트는 얕은 만큼 달빛을 많이 탑니다.

달이 밝은 날에는 너무 인적이 드문 산중 소류지는 피하고, 가로등이 켜진 마을 앞 저수지, 차량통행이 빈번한 도로 옆 저수지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낮낚시는 잘 되는데 밤낚시가 안 되는 저수지가 있을 겁니다. 그런 곳은 달이 밝은 밤에 밤낚시를 시도해보면 좋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달을 많이 타는 소류지가 있으면 밤보다 아침 일찍 찾아가서 낚시해보시면 의외의 조황이 있을 겁니다.

 

Q서찬수씨는 갓낚시 대신 일반낚시를 할 때는 없나요?
A 있습니다. 저도 댐이나 강에서 떡밥낚시를 할 때는 일반인과 똑같이 낚시하고, 수초가 안쪽까지 멋지게 자란 저수지라면 굳이 가를 노릴 것 없이 정면으로 던져서 수초대를 노립니다.

갓낚시란 일반낚시의 보조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일반 낚시에서 더 입질을 받기 쉽도록 특화한 것이 갓낚시라 생각합니다. 제 경우엔 앞보다 좌우를 더욱 눈여겨보고 생자리를 많이 찾아다니다보니 자연적으로 갓낚시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고기가 가로 나오지 않는 환경조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지금 같은 폭염이나, 태풍급 비바람이 퍼부을 때, 한겨울 혹한기… 그럴 때도 붕어가 가로 잘 나오나요?
A 계절이나 특정한 환경조건을 떠나서 붕어가 잘 낚일 때는 가로 잘 나오고, 잘 안 낚일 때는 가로 잘 안 나옵니다.

말씀하신 악조건에서는 붕어가 가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깊은 곳에서 잘 낚이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리고 낚시를 해보면 역시 사람에게 쾌적한 시기가 낚시도 잘 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Q갓낚시 미끼는 새우만 쓰나요?
A 주로 새우를 쓰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미끼도 씁니다. 짙은 뻘물이 졌을 때는 밤에도 지렁이가 잘 듣습니다. 그리고 배스, 블루길, 동사리가 많은 곳에선 새우에 그런 잡어들이 먼저 달려드는데 그런 곳에선 떡밥, 옥수수, 번데기(통조림)로 갓낚시를 하면 좋습니다.

 

Q밑밥은 쓰지 않나요?
A 밑밥은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속의 바닥이 중요합니다. 좋은 바닥이라면 밑밥이 없어도 붕어가 모여들고, 나쁜 바닥이라면 밑밥을 뿌려도 붕어가 오지 않습니다.
간혹 뻘층이 두터운 곳에선 저는 잔 돌(자갈)을 밑밥 대신 뿌려줍니다.

돌 부스러기가 뻘을 덮어서 새우나 여러 미생물이 모여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새우낚시에서 수초를 걷어낸 자리에 겉보리를 넣는 목적은 집어보다 바닥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의 효과는 겉보리보다 자갈이 더 낫습니다.

제가 찌를 세우는 곳은 음습한 바닥을 피해 물속의 자연 생태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라면 밑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Q새우미끼는 자주 갈아주지 말라던데 왜 그렇습니까?
A 저도 그런 말을 종종 듣지만, 그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입질이 없을수록 미끼는 자주 던져주는 것이 좋습니다.

입질이 없다는 것은 붕어가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경우 미끼를 자주 던져서 주의를 환기시켜야 합니다.

특히 바닥에 퇴적물이 많은 곳에선 미끼가 파묻힐 위험이 있으므로 자주 들어내서 던져줘야 합니다.

그럼 붕어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해서 입질이 들어옵니다. 입질이 없다고 멍하니 있지 말고 그냥 들어냈다가 다시 던져주는 동작만 이따금 해주어도 입질을 더 자주 받을 수 있습니다.

 

Q새우는 통새우 그대로 써야 잔챙이 성화를 피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서찬수씨는 뿔을 잘라주면 더 좋다고 하셨더군요. 어느 말이 맞는지 헷갈립니다.
A 통새우가 잔챙이 성화를 피할 수 있다는 건 맞습니다. 저도 그런 곳에선 큰 새우를 그대로 씁니다.

그러나 잔챙이 성화가 없는 곳에선 통새우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그때는 붕어가 가장 먹기 좋은 크기의 새우를 달아서 빠른 입질을 유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또 월척도 통새우를 한 번에 먹지 못하고 예신을 한참 보내다가 본격적으로 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머리의 뿔을 잘라주면 예신이 짧아지고 바로 본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머리를 통째로 떼어내면 안 됩니다. 머리가 없는 새우에는 큰 붕어가 입질하지 않습니다.

 

Q수중턱을 노리라고 하는데 어떤 곳을 말합니까?
A 간단히 말해 주변에서 가장 얕은 곳이 수중턱입니다.

찌를 여기저기 던져보아서 찌가 불쑥 솟아오르는 자리가 수중턱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깊은 곳에 찌를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가장 얕은 곳에 두고 기다리면 입질도 잦고 씨알도 월등히 굵을 겁니다.
수중의 깊은 곳은 붕어동네에선 인적 드문 뒷골목과 같고, 얕은 곳은 왕래가 빈번한 사거리와 같습니다. 장사를 하려면 목이 좋은 곳에 전을 펴고 손님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Q갓낚시는 맨바닥을 선호한다지만 수초에서 벗어나면 붕어가 입질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합니다. 수초 없는 맹탕바닥에 던져둔 찌에는 입질이 없던데요?
A ‘수초 없는 곳에 붕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일종의 편견입니다.

수초 없는 맨바닥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낚시해보세요. 경험이 없으니 자연히 맨바닥에서 포인트 보는 눈이 없을 수밖에요. 자신이 없으니 점점 수초만 찾게 되고 맨바닥은 점점 피하게 되지요.
맹탕에도 수초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수면이 아닌 물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초’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수초의 역할을 하는 작은 돌, 나뭇가지, 흙더미, 물골의 덕 등이 수초의 역할을 하며 그런 곳에서 붕어들이 휴식도 취하고 먹이도 찾고 알도 낳습니다.
그런 곳을 찾아서 미끼를 던져보세요. 눈에 보이는 수초 사이에 던진 것보다 더 잦은 입질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Q수초가 많은 곳에서는 어디를 노려야 하나요?
A 수초가 많은 저수지에 가시면 먼저 정수수초를 찾으세요.

말풀이나 마름 같은 침수수초보다 갈대나 뗏장수초, 부들 등 얕은 곳에 자라는 정수수초가 좋습니다. 정수수초가 자란 곳은 수심이 얕다는 증거이며 바닥이 단단하고 밝으며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또 수초대 속에 돌이나 수몰나무가 있으면 더 좋은 포인트입니다.
한편 침수수초밖에 없으면 수초 가장자리를 노리세요. 아무리 수초가 밀생해 있어도 수초대와 땅 사이에는 찌 몇 개쯤 세울 수 있는 공간이 비워져 있습니다.

수심은 30cm면 충분합니다. 설령 덮여 있더라도 물가로 다가가서 받침대를 가지고 살짝 밀쳐 주면 멋진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말풀이 물가까지 덮여 있으면 붕어들은 가 쪽으로 더 경계심 없이 잘 나오는 성질이 있습니다.

 

Q얕은 수심이라도 명당이 있을 텐데 그곳이 어딥니까?
A 당연히 명당이 있고말고요.

얕은 곳이라도 바닥이 깨끗한 곳, 물속에 작은 돌이나 나뭇가지가 있는 곳, 도로나 산자락을 끼면서 얕은 자리가 있는 곳, 물속에 굴곡이 있는 곳은 더 좋은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일단 물이 자주 흐르는 곳이 좋습니다. 바닥의 퇴적물이 씻겨서 깨끗하고 새우 등 붕어의 먹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물이 흐르는 상류나 무넘기를 많이 찾고 중류나 하류라도 물이 내려오는 골을 선호합니다. 물이 흐르는 곳은 경사 또한 완만해 더 좋습니다.

 

Q기사에 보면 ‘80cm 수심’이 많이 언급되던데 왜 하필 80cm입니까?
A 80cm는 얕은 수심과 깊은 수심의 경계쯤 되는 수심입니다.

맑은 물이나 어두운 물이라도 이 수심에서 빛의 영향의 기준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즉 맑은 물색이라도 80cm 수심이면 어느 정도 바닥이 어둡고, 어두운 물색이라도 80cm 수심이면 바닥이 그런대로 환하지요.

그래서인지 이 수심에서 흔히 말하는 대물의 출몰이 잦고 마릿수도 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제방에서 갓낚시를 많이 하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A 제방이 아니라 무넘기에서 자주 합니다. 제방의 중간부분에서는 큰 재미가 없습니다.

또 흙으로 된 제방은 갓낚시를 하기 좋지만 석축 제방은 돌 틈에 바늘이 자주 빠져서 짜증스럽습니다.

아마 제방에서 낚시하던 몇몇 사진이 색달라 보여서 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가 봅니다. 저도 일반 대물낚시인과 마찬가지로 상류에서 낚시하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Q조우들과 출조하는데 갓낚시를 하려니 많은 신경이 쓰입니다. 한쪽에서 소란스럽게 해도 다른 한쪽은 정숙하다면 갓낚시가 가능한지요? 그렇다고 혼자 다닐 수도 없고… 조언 부탁드립니다.
A 포인트 선정은 조우분들이 자리를 잡은 후 마지막으로 잡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가장 많이 걸어 들어가는 곳,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조용히 갓낚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저도 일행이 많으면 그런 곳을 찾습니다.  

 

 

 

2002년 3월 의령 대신지에서 논둑 밑을 노린 갓낚시로 월척을 끌어내는 서찬수씨의 모습. 당시 월간낚시에 실렸던 사진이다.

 

<월척 쉽게 낚는 책>에 실린 삽화. 인기척이 붕어낚시에 얼마나 해로운가를 설명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서 물가를 공략하는 갓낚시의 원리를 설명한 그림. 역시 <월척 쉽게 낚는 책>에 실렸다.

 

허송 서찬수님 별세

 

김중석[낚시춘추 객원기자. (주)천류 필드스탭 팀장]

 

갓낚시창사자이면서도 본인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연구 개발하여 안내병 채비를 고안해 세상 밖으로 내 놓아 수많은 낚시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최근까지 한국낚시채널 FTV ‘붕어낚시월척특급진행자였던 허송 서찬수님이 지난 216일 새벽 3시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우리나라 낚시계의 붕어낚시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고 우리의 곁을 떠나신 허송님의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낚시인들이 함께 슬퍼하며 애도했다.

이날 천지어인 회원들과 낚시계 어른이신 송귀섭 선생님과 윤기한 선생님을 비록하여 수 많은 낚시계 인사들도 장례식장을 찾아 애도의 마음을 전해줬다.

송귀섭 선생님께서는 동네아저씨 같은 우리 동호인이 돌아 올 수 없는 출조길로 먼저 떠났습니다. 아직은 젊은 나이인데 너무 가슴 아프다라고 애석해 하셨다.

 

 

 

 

 

 

 

 

 

 

 

 

 

 

 

 

 

 

 

 

 

 

 

 

 

 

 

 

 

 

 

 

 

 

 

 

 

 

 

 

 

 

 

 

 

 

 

 

 

 

 

 

 

FTV에서 허송 서찬수님의 추모 영상이 방송 될 예정입니다.

방송을 통해서 허송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시고, 명복을 빌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금 허송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제발 아프지 마시고, 그 토록 좋아 하시는 낚시 즐기시길 바래봅니다.

 

 

허송 서찬수님 마지막 사진들...

 

김중석 [낚시춘추 객원기자. (주)천류 필드스탭 팀장]

 

우리나라 낚시계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신 허송 서찬수님...

지난해 10월말 뜻하지 않은 암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남의 일 같지 않은 마음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꾸밈없고 서민적인 낚시를 추구 해 왔기에 낚시인이라면 누구나 그를 칭찬하고, 인기도 대단한 분으로 기억들 하실 것이라 믿는 분께서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후 외롭게 병마와 싸우고 계실 허송님을 얼굴이라도 한번 뵈어야 도리라 생각하고 수소문한 끝에 작년 1225일 창녕에서 요양하고 계신 허송님을 찾아 뵐 수 있었다.

마침 그날은 허송님 생일이라 천지어인 회원들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허송님께서는 평소에 술을 좋아 하셨지만 즐겨 마시던 술보다도 B형 간염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들었는데 B형 간염에는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생식(날것으로 먹는 음식), 음주, 과로를 피해야 하는데 정작 본인은 B형 간염에 걸려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생식을 즐겨 드셔왔다고 해 더욱 더 안타까웠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천지어인 회원님들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앉아 있기가 힘드셨는지 큰방으로 들어가 혼자 누워 계셔 곁에 앉아 두 손으로 허송님의 손을 잡았는데 허송님의 두 눈에는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모습에 가슴에 메여왔다.

 

허송님이 요양하고 계신 창녕에 두 번째로 찾은 날짜가 지난 11.

일주 일만에 찾아뵌 허송님. 해가 바뀌면서 새해 인사를 할 겸 찾았는데 그토록 반갑게 맞이 해주시면서 꼭 일어 날거니까 걱정마라며 오히려 저에게 위안을 해주셨다.

얼굴에는 병색이 짙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자신하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며 지팡이를 짚고 집 앞 저수지가로 운동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돌아왔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이제야 허송님과 함께 했던 출조일지를 찾아보니 200592일과 2007120일 두 차례뿐이었다.

요즘 허송님이 개발 해 낚시인들에게 알려진 안내병 채비를 그는 그 당시에 이미 본인께서 창안하신 갓낚시에 접목시켜 사용하고 있었고, 저에게 그 채비를 쓰리쓰리 싹쓸이 채비라며 채비 도를 그려가면서 알려주었었다.

붕어가 있으면 모조리 낚아낼 수 있다하여 비공개로 붙여진 이름이 쓰리쓰리 싹쓸이 채비인데 그것이 오늘날 안내병 채비인 것이다.

 

저 뿐만 아니라 낚시계의 선배님들, 그리고 수많은 낚시인들의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허송님은 가시고 말았습니다.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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