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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원문 기사전송 2009-06-03 09:55
[오마이뉴스 김당 기자]
인간의 감성을 표출하고 전달하는 데 분노와 눈물만큼 효과적인 매개체는 없다. 대중은 자신들이 화가 날 때 함께 분노하고, 자신들이 슬퍼할 때 함께 눈물을 흘리는 정치인의 인간적 모습에 감응한다. 그런 점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감성의 정치인'이다. 2002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그는 자신을 연대후보로 선출한 개혁국민정당 문성근의 지지연설을 들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열렬한 지지자였던 문성근의 감동적인 연설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떠올린, 대선후보가 되기까지의 간난(艱難)과 신고(辛苦)가 그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그 장면은 나중에 대선 정치광고로 만들어져 유권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곧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라크에 주둔한 한국군 자이툰 부대를 방문해 병사들을 만나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퇴임을 앞두고 '노사모' 회원들을 청와대 녹지원에 초청해서도 눈물을 뿌렸다. 그리고 그의 서거 이후 많은 사람들은 '친구 같은 서민 대통령'을 잃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노무현은 감성의 정치인, 김대중은 이성의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감성의 정치인이라면,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성의 정치인'이다. DJ는 1987년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처음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했다. 그러나 DJ는 서민이 아니었고 서민이 될 수도 없었다. 그는 서민들과 공명(共鳴)하기보다는 서민을 위한 정치에 본분을 두었다. 그의 대척점에 그를 영원한 경쟁자로 여겼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있다. 두 사람은 30년 민주화 동지이자 경쟁자였다. 그래서 DJ와 YS를 비교한 말과 글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박지원 의원의 이런 평보다 더 적확한 '촌철살인'은 보지 못했다. "YS는 한 번에 180도를 바꾼다. DJ는 논리적이어서 하루에 1도씩 바뀐다."
그런 DJ가 노무현의 주검 앞에서 오열했다. DJ가 대중 앞에서 펑펑 운 것은 1987년 5.18 국립묘지(당시는 망월동 공동묘지 5.18묘역)를 참배해 통한의 눈물을 흘린 이후 처음이다(1980년 5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가 7년만에 광주 영령들 앞에 섰으니 어찌 오열하지 않을 수 있으랴). DJ는 5월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부인 이희호씨와 함께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유족에게 다가가 권양숙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오열했다. 이에 영결식 내내 슬픔을 억누르던 권씨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내외, 그리고 한명숙 공동장의위원장도 함께 일어나 눈물을 흘렸다. 앞서 헌화한 이명박(MB) 대통령이 인사할 때 유족들은 앉은 채로 외면했다. 무엇이 노구의 전직 대통령을 펑펑 울게 했을까?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영결식에 참석한 노(老) 대통령은 영결식 내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비통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열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 오열의 정체는 뭘까? 무엇이 노구의 전직 대통령을 펑펑 울게 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DJ의 분신인 박지원 의원은 알 것 같았다. 2일 박 의원에게 물었다. - 김 전 대통령이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는 것을 봤다. 지켜본 소감이 어떤가. "영결식장에서 오열하시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어제도 대통령님과 같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관련)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때 본 것과 대화 내용을 토대로 모레 대학 강연 때 얘기하려고 한다." 박 의원은 오는 4일 목포대 경영대학원에서 '노무현의 죽음과 김대중의 슬픔, 민주정부 10년의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특강을 할 예정이다. - DJ가 그처럼 오열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왜 오열했는가. "DJ 대통령께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째, 민주주의가 5공과 유신으로 회귀하는 것 둘째, 서민경제와 소외계층 및 중소기업이 도탄에 빠진 것 셋째, 남북관계가 위기에 처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DJ 대통령께서는 민주정부 10년을 이끈 전직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 세 가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구상'을 했다는 것을 (DJ와) 대화할 때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고, 저와 대화할 때도 '날개 한 쪽이 뜯겨 없어졌다'고 한 것이다." DJ "내 몸의 반이 무너지고 날개 한 쪽이 뜯겨 없어졌다" DJ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23일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다"며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고 애통해했다. 그리고 유족과 한명숙 장례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려고 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자, 5월 28일 서울역 분향소에서 조문을 한 뒤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환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진 마음이 앞으로 민주주의, 좋은 경제, 남북관계 화해 등 노 대통령이 추진하던 3대 정책에 발맞추어 국민이 나아갈 것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는 노무현과 김대중이 앞장서서 해왔고, 남북관계도 그랬다. 경제도 내가 외환보유고 1400억불을 노 대통령에게 넘겨줬다. (내가 정부를) 처음 맡을 때는 (외환보유고가) 37억불이었다. 노 대통령도 1200억불을 보태 다음 정부에 2600억불을 넘겨줬다. (그것이 없었다면 이명박 정부가) 세계적인 금융위기 앞에서 차입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박지원 의원은 기자들이 DJ와 노무현, 그리고 MB 정부의 국정 운용의 다른 점을 묻자 "(조각 당시) DJ는 정치인과 교수-시민단체 그리고 관료를 3분해 중용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에 치중했고, MB는 교수집단을 중용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인은 현실적이고, 시민사회단체와 교수는 이상적이고, 공무원은 안정을 중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DJ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상주의자라면, 노무현은 이상에 발을 디딘 현실주의자이다. DJ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진보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김 전 대통령은 현실에서 민주주의 후퇴와 3대 위기 극복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노 전 대통령과 연대를 구상했던 것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몸의 절반 혹은 날개 한 쪽을 잃은 아픔과 슬픔 말고도, 위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바로 그 '연대의 상실감'이 오열로 나타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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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덕수궁 앞 분향소를 강제 철거한 뒤 그냥 그 자리에서 영정만 새로 모시고 진행된 조문, 저는 되도록 나서지 않으려고 했는 데 화가나서 저도 이 자리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영정이 모셔진 단상에 기대진 굵은 몽둥이 같은 나무 뿌리
저게 뭐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시골에서 자라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칡'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생전에 칡을 좋아하셨답니다. 참 어떻게 그런것 까지 아시는 지..어느 분께서 칡을 놓고 가셨습니다.
담배도 아래 화면의 이 담배를 좋아하셨답니다. 저는 담배를 끊어서 담배 이름을 잘 모르겠는 데 '무슨 나인'이라는 담배랍니다. 이 담배 다음으로는 '디스'라는 담배를 좋아하셨다는 군요. 어떻게 그런 걸 알고 노 대통령이 좋아하는 것들만 가져 오시는 지 참 놀랍습니다.
어느 여성 분이 정성껏 바치신 노란 색 장미 꽃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노란 풍선이 곱게 달린 국화!!
종이학
노대통령이 쓴 책 - 여보 나 좀 도와 줘!!
노 대통령께서 이 아름다운 마음들을 잘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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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장 10보] 권양숙씨 눈물작별 끝 탈진…경찰·시민 서울광장 대치
시민 1만여명 서울광장 남아 다시 '촛불' 들어
30일 오후 '5·30 범국민대회' 참여 독려도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고픈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서울광장에 남아 그를 기렸다. 29일 밤 12시께 서울광장 일대의 시민들 수는 1만여명(경찰 추산 6700여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서울광장에 다시 촛불을 켰다. 시민들은 생전 노 전 대통령을 지켰던 촛불로 광장을 가득 메운 채, 그에 대한 추억을 되새겼다. 덕수궁 대한문부터 서울시청이 끝나는 세종로 길에도 시민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늦은 시각까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했다. 회사원 박영철(39)씨는 "연차휴가를 내고 나왔는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더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다"며 "회사 동료들도 퇴근하면 이쪽으로 오기로 했는데, 모여서 함께 이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경복궁 쪽으로 향하는 세종로 길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청와대를 돌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경찰들과 대치했다. 회사원 조민재(33)씨는 "가장 서민적인 대통령이었는데, 직장인이라 계속 지키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한 번밖에 조문하지 못했다"며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가시는 길까지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노동·사회·학생 단체로 구성된 '노동탄압 분쇄·민중생존권·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이 30일 오후 4시부터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는 '5·30 범국민대회'의 참여를 알리기도 했다.
한편,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은 이날 청계광장으로 진출하려다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홍석재 권오성 송채경화 기자 forchis@hani.co.kr
"이대론 못 보냅니다" 서울광장 밤 밝힌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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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 시민들 2만여명 운구행렬 맞으며 오열
분향실서 애끊는 작별, 권양숙씨 울다 무너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꽃 속에서 재가 되었다. 불꽃과 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그렇게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서울역 광장을 출발한 지 1시간여 만인 오후 6시5분께 경기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예상 도착 시간보다 3시간 가량 늦어졌지만, 시민들은 뙤약볕 아래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을 기다렸다. 수원 연화장에 모인 시민들은 2만여명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운구행렬이 들어서자 곳곳에서 오열했고, 때로는 "노무현, 노무현"을 외쳤다.
영구차에서 모습을 드러낸 노 전 대통령의 운구를 국군 의장대 장병 11명은 승화원 화장장 안으로 옮겼다. 화장장으로 들어선 운구는 대차로 다시 옮겨 진 뒤 화장실 8호로 향했다. 권양숙씨 등 유가족들과 장의위원,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은 분향실 8호에 들어섰다.
6시25분 운구를 분향실 8호로 옮겨 유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의식(고별)이 시작됐다. 권양숙씨는 결국 흐느끼며 의자에 주저 앉고 말았다. 한명숙·한승수 공동위원장 등 장례 관계자들은 6호실에서, 일반 시민들은 승화원 앞 마당에 설치된 대형 텔레비전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화장실 8호의 문은 열렸고, 운구는 화로 속으로 옮겨졌다. 1000도의 불꽃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재가 되어갔다.
한편,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 1만여명은 자리를 지켰다. 6시께 운구행렬을 따랐던 시민 500여명도 다시 서울광장으로 모였다. 경찰은 서울광장 옆 태평로에 전경 버스로 벽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집을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방송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경찰 대열 앞에, 서울광장 잔디밭 등 곳곳에 모여 앉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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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행렬 화장장행 길목마다 애도 인파에 막혀
서울역광장 출발 뒤 2시간여 지나서야 고속도로 진입
경찰 청와대 방면 물대포차 배치…항의시위 진압채비
화장을 위해 수원시립 연화장으로 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수많은 시민들의 애도 속에 가로막혀 서울역광장을 떠난 지 2시간이 넘도록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부 감정에 복받힌 시민들이 운구행렬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실은 운구차는 이날 오후 5시30분께 효창공원 쪽에서 삼각지역 사거리 앞으로 향하는 고가도로 위를 지나 녹사평역 사거리와 반포대교를 향했다. 삼각지역 사거리 앞의 고가도로 입구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운구행렬을 가로막았고, 전경 400여명이 운구차 주위를 에워싸기도 했다. 시민들은 감정을 다스린 뒤 조금씩 길을 열어줬다. 오후 6시 현재 운구행렬은 도심을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해 수원 연화장으로 제 속도를 내며 이동하고 있다.
앞서 오후 3시30분께 서울역 광장 앞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1만여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이 뒤를 따르는 가운데 수원 연화장으로 향했지만 길목마다 안타까워하는 시민들로 인해 제대로 속도를 못 낸 채 예정시간보다 계속 지체됐다. 운구행렬은 서울역 광장을 출발해 남영역 네거리에서 용산경찰서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삼각지역 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애초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곧장 삼각지역, 녹사평역 등을 거쳐 반포대교로 가려했었다. 추모시민들을 피해 잠시 옆길로 돌아간 것이다.
당시 운구행렬을 따르던 시민들은 남영역 사거리에 이르자 두 무리로 나뉘어 일부는 용산경찰서 방향으로 옆으로 빠진 운구행렬을 따르고, 나머지는 곧장 삼각지역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곧장 내려간 시민들이 삼각지역에서 운구행렬 앞을 막아서게 된 것이다.
한편, 경찰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한때 기습적으로 둘러싸 항의하는 시민들과 충돌을 빚으면서 서울광장 인근 도로는 이날 오후 내내 도로가 통제됐다. 일부 시민들이 만장을 앞세운 채 경찰과 대치해 있다. 경찰은 세종로사거리 청와대 방면에 물대포차를 배치하고,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는 휴대용 색소 물대포를 준비하는 등 시위 진압을 위해 준비를 갖추고 있다. 경찰은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슬픔은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나누자"라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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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서울광장 기습 봉쇄, 시민 항의 시위
[국민장 7보]운구행렬 빠져나간 틈타 전경차 벽 시도
시민들 속속 모여들어 몸싸움 대치 "독재 타도" 구호도
경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끝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또다시 봉쇄하려 하자 시민들이 거센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29일 오후 노제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따라 참석했던 시민들이 빠져나가면서 서울광장이 다소 한적해졌다. 이를 틈 타 경찰은 오후 3시20분부터 전경버스를 동원해 서울광장 일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이 여전히 광장에 남아 있었던 상태였다.
이에 거리 방송을 하던 차량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흥분한 일부 대학생 등 시민 500여명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물병을 던지고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일단 전경버스를 철수시켰지만 서울광장 무교동 방향에서 경찰 병력을 동원해 항의하는 시민들을 진압하고 나섰다. 시민들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앞서 오후 3시30분께 서울역 광장을 빠져나온 운구행렬은 화장을 위해 경기 수원 연화장으로 출발했다. 운구행렬을 뒤따른 장의위원들도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버스를 나눠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 수원 연화장 일대에는 노란색 풍선 등으로 온통 노란색 물결이 일고 있다. 수원지역 노사모 회원들은 자체 추산 2만여명(경찰 추산 2천여명)의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이날 오전부터 운구행렬이 지나는 수원 연화장 진입로 일대에 노란 풍선과 펼침막 등을 장식해 놓았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장의위원 외에 일반 시민들의 출입은 제한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화장을 마친 뒤 곧바로 김해 봉화마을로 출발해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뒤에 있는 봉화산에 있는 정토원에 49재 때까지 안치될 예정이다.
이완 홍석재 송채경화 김성환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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